목포 고하도는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함대가 주둔하며 전력을 보강했던 섬이다. 고하도 용오름둘레길은 해안을 따라 용머리까지 갔다 오는 왕복 코스로, 고하도의 이순신 역사문화탐방로다.
지금은 목포와 다리로 연결된 고하도(高下島)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서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함대는 명량해전 승리 직후 서둘러 몸을 숨겨야 했다. 아직도 건재한 수백 척의 왜군 함대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함대는 바로 군산 앞바다 고군산도까지 퇴각하여 은신한다. 지금의 선유도다.
잠깐 숨을 돌린 이순신 함대는 1597년(선조30) 10월 29일 고하도(高下島)로 내려가 진을 친다. 섬의 서북쪽이 병풍처럼 솟아있어 배를 감추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고하도는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이라 전략적 요충지였다.
1598년(선조31) 2월 17일 완도(莞島)의 고금도로 옮겨갈 때까지 고하도는 108일간 조선수군의 총사령부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이순신은 소멸되다시피 한 조선 수군의 재건을 위해 전함을 건조하고 군량미를 모집한다. 고하도에서의 노력으로 조선 수군은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다. 조선시대에 나주목(羅州牧)에 속했던 고하도는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보화도(寶花島)로 나온다.
조선시대 나주목에 속했던 고하도는 목포와 불과 2㎞ 거리밖에 안될 정도로 가깝다. 고하도는 보화도(寶和島), 비노도(悲露島), 고하도(孤下島)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해서 고하도라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목포 사람들은 흔히 ‘용섬’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형상의 용머리해안 때문이지 싶다.
고하도에는 ‘원마을’ ‘아래쪽마을’ ‘섭드러지’ ‘큰덕골’ ‘뒷도랑’ ‘가장골’ 등의 작은 자연부락들이 있는데 가장 큰 마을은 선착장 부근의 원마을이다. 이 일대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모충각’이 있고, 모충각 안에 이충무공기념비가 있다. 모충각 주변의 큰산 일대에 이순신장군이 조성한 고하도진성이 있다. 이들 유적들이 통칭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이다.
고하도의 큰산∼말바위 일대에서 고하도진지 유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순신이 정유재란 당시 고하도에 진지를 구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던 곳이다. 유적지 근처 큰덕골에는 이순신이 전함을 건조하던 조선장(造船場)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곳이 간척지가 되어 사라지고 없다. 다리가 놓아지기 전까지는 원마을 선착장과 목포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선들만 정박해 있다.
목포 고하도는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함대가 주둔하며 전력을 보강했던 섬이다. 고하도 용오름둘레길은 해안을 따라 용머리까지 갔다 오는 왕복 코스로, 고하도의 이순신 역사문화탐방로다.
지금은 목포와 다리로 연결된 고하도(高下島)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서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함대는 명량해전 승리 직후 서둘러 몸을 숨겨야 했다. 아직도 건재한 수백 척의 왜군 함대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함대는 바로 군산 앞바다 고군산도까지 퇴각하여 은신한다. 지금의 선유도다.
잠깐 숨을 돌린 이순신 함대는 1597년(선조30) 10월 29일 고하도(高下島)로 내려가 진을 친다. 섬의 서북쪽이 병풍처럼 솟아있어 배를 감추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고하도는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이라 전략적 요충지였다.
1598년(선조31) 2월 17일 완도(莞島)의 고금도로 옮겨갈 때까지 고하도는 108일간 조선수군의 총사령부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이순신은 소멸되다시피 한 조선 수군의 재건을 위해 전함을 건조하고 군량미를 모집한다. 고하도에서의 노력으로 조선 수군은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다. 조선시대에 나주목(羅州牧)에 속했던 고하도는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보화도(寶花島)로 나온다.
조선시대 나주목에 속했던 고하도는 목포와 불과 2㎞ 거리밖에 안될 정도로 가깝다. 고하도는 보화도(寶和島), 비노도(悲露島), 고하도(孤下島)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해서 고하도라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목포 사람들은 흔히 ‘용섬’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형상의 용머리해안 때문이지 싶다.
고하도에는 ‘원마을’ ‘아래쪽마을’ ‘섭드러지’ ‘큰덕골’ ‘뒷도랑’ ‘가장골’ 등의 작은 자연부락들이 있는데 가장 큰 마을은 선착장 부근의 원마을이다. 이 일대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모충각’이 있고, 모충각 안에 이충무공기념비가 있다. 모충각 주변의 큰산 일대에 이순신장군이 조성한 고하도진성이 있다. 이들 유적들이 통칭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이다.
고하도의 큰산∼말바위 일대에서 고하도진지 유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순신이 정유재란 당시 고하도에 진지를 구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던 곳이다. 유적지 근처 큰덕골에는 이순신이 전함을 건조하던 조선장(造船場)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곳이 간척지가 되어 사라지고 없다. 다리가 놓아지기 전까지는 원마을 선착장과 목포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선들만 정박해 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