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도 둘레길은 숲과 흰 조약돌 해변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물이 빠지면 덤으로 수십만평의 모래평원인 풀등 위를 걸을 수도 있다. 숲길은 숲과 임도로 이어지고, 해안길은 해식동굴과 흰 조약돌 해변으로 이어진다. 신발을 벗고 몽글몽글 조약돌 해변 위를 걸으면 한달음에 피로가 달아난다.
송이도에는 들물 때면 숨어 있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수십만 평의 모래 평원인 풀등이 있다. ‘맛등’이라고 하는데, 송이도와 대소이각도 사이에 있다. 언뜻 펄 갯벌처럼 보이지만 송이도 맛등은 약간의 펄이 섞인 모래평원이다. 이 거대한 맛등이 골재로 파헤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펄이 섞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모래 채취로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바다 생태계에 다행스런 일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들어가도 빠지지 않는 모래밭. 대이작도 풀등보다는 모래에 펄이 많이 섞여 있지만 넓이는 그에 못지않다. 과거에는 이 맛등 때문에 조난사고도 잦았다. 맛등은 송이도의 특산물인 동백하, 새우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맛조개와 대합이 많이 나는 조개밭이기도 하다. 맛등에는 한때 지주식 김 양식장을 했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 이상 김발을 하지 않는 맛등에는 잘려나간 말뚝들이 촘촘히 박혀서 옛 시절을 증언하다. 풀등에서는 백합과 바지락과 맛조개를 직접 캐는 갯벌체험도 가능하다.
송이도는 낙월면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섬으로 총면적은 3.68㎢, 해안선 길이는 11㎞이다. 섬 주위에 각이도, 대노인도, 소노인도 등의 작은 무인도 섬들이 있다. 송이도 몽돌해변은 1km에 이르는 해변 전체가 흰 조약돌(몽돌)에 덮여 있는 아주 특별한 해변이다. 해변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서해 일몰이란 편견을 깨뜨려주는 반전의 일출이다.
송이도에도 예전에는 4개의 마을이 있었다. 외미와 야은골, 큰말, 작은말. 큰말 작은말은 위아래 동네로 여전하지만 외미와 야은골 사람들은 큰말로 이주되면서 폐촌이 되었다. 30년 전쯤 안보상의 이유로 독립가옥들이 철거되면서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섬들을 다니다 보면 그렇게 사라진 마을이 부지기수다. 현대판 공도정책이었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 그들은 더 이상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칠산어장의 중심인 칠산도는 송이도의 새끼섬이다. 칠산어장에 조기 군단이 회유하던 시절 송이도 앞바다도 해마다 봄이면 수천 척의 배들이 찾아왔다. 안마도와 달리 송이도 사람들은 일찍부터 어로활동을 했다. 그래서 섬에는 부자들이 많았다. 그 무렵 송이도의 250세대 거의 전부가 안강망 배로 조기잡이를 했다. 파시가 서지는 않았지만 송이도는 조기의 천국이었다.
송이도에서도 굴비를 만들었다. 간통에 간질을 한 송이도 굴비는 덕장이 아니라 흰 갯돌 밭에서 말렸다. 잡아온 조기를 생으로 파는 것보다 굴비를 말려 파는 것이 이익이 훨씬 컸다. 칠산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지면서 송이도의 어업도 쇠퇴했고 인구도 급격히 줄었다. 마을 안길 끝자락쯤에 폐교가 된 법성초등학교 송이분교장 건물이 있다. 2008년 9월 1일자로 문을 닫았다. 폐교 뒤편 숲이 마을의 당산이다. 팽나무 고목들이 여러 그루 늘어선 산길. 아랫당과 윗당이다.
칠산도 괭이갈매기, 노랑부리백로 및 저어새 번식지가 천연기념물 제3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왕소사나무 군락지는 천연보호림 10-8호로 지정되어 있는 등 송이도는 해양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송이도 둘레길은 숲과 흰 조약돌 해변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물이 빠지면 덤으로 수십만평의 모래평원인 풀등 위를 걸을 수도 있다. 숲길은 숲과 임도로 이어지고, 해안길은 해식동굴과 흰 조약돌 해변으로 이어진다. 신발을 벗고 몽글몽글 조약돌 해변 위를 걸으면 한달음에 피로가 달아난다.
송이도에는 들물 때면 숨어 있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수십만 평의 모래 평원인 풀등이 있다. ‘맛등’이라고 하는데, 송이도와 대소이각도 사이에 있다. 언뜻 펄 갯벌처럼 보이지만 송이도 맛등은 약간의 펄이 섞인 모래평원이다. 이 거대한 맛등이 골재로 파헤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펄이 섞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모래 채취로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바다 생태계에 다행스런 일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들어가도 빠지지 않는 모래밭. 대이작도 풀등보다는 모래에 펄이 많이 섞여 있지만 넓이는 그에 못지않다. 과거에는 이 맛등 때문에 조난사고도 잦았다. 맛등은 송이도의 특산물인 동백하, 새우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맛조개와 대합이 많이 나는 조개밭이기도 하다. 맛등에는 한때 지주식 김 양식장을 했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 이상 김발을 하지 않는 맛등에는 잘려나간 말뚝들이 촘촘히 박혀서 옛 시절을 증언하다. 풀등에서는 백합과 바지락과 맛조개를 직접 캐는 갯벌체험도 가능하다.
송이도는 낙월면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섬으로 총면적은 3.68㎢, 해안선 길이는 11㎞이다. 섬 주위에 각이도, 대노인도, 소노인도 등의 작은 무인도 섬들이 있다. 송이도 몽돌해변은 1km에 이르는 해변 전체가 흰 조약돌(몽돌)에 덮여 있는 아주 특별한 해변이다. 해변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서해 일몰이란 편견을 깨뜨려주는 반전의 일출이다.
송이도에도 예전에는 4개의 마을이 있었다. 외미와 야은골, 큰말, 작은말. 큰말 작은말은 위아래 동네로 여전하지만 외미와 야은골 사람들은 큰말로 이주되면서 폐촌이 되었다. 30년 전쯤 안보상의 이유로 독립가옥들이 철거되면서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섬들을 다니다 보면 그렇게 사라진 마을이 부지기수다. 현대판 공도정책이었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 그들은 더 이상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칠산어장의 중심인 칠산도는 송이도의 새끼섬이다. 칠산어장에 조기 군단이 회유하던 시절 송이도 앞바다도 해마다 봄이면 수천 척의 배들이 찾아왔다. 안마도와 달리 송이도 사람들은 일찍부터 어로활동을 했다. 그래서 섬에는 부자들이 많았다. 그 무렵 송이도의 250세대 거의 전부가 안강망 배로 조기잡이를 했다. 파시가 서지는 않았지만 송이도는 조기의 천국이었다.
송이도에서도 굴비를 만들었다. 간통에 간질을 한 송이도 굴비는 덕장이 아니라 흰 갯돌 밭에서 말렸다. 잡아온 조기를 생으로 파는 것보다 굴비를 말려 파는 것이 이익이 훨씬 컸다. 칠산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지면서 송이도의 어업도 쇠퇴했고 인구도 급격히 줄었다. 마을 안길 끝자락쯤에 폐교가 된 법성초등학교 송이분교장 건물이 있다. 2008년 9월 1일자로 문을 닫았다. 폐교 뒤편 숲이 마을의 당산이다. 팽나무 고목들이 여러 그루 늘어선 산길. 아랫당과 윗당이다.
칠산도 괭이갈매기, 노랑부리백로 및 저어새 번식지가 천연기념물 제3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왕소사나무 군락지는 천연보호림 10-8호로 지정되어 있는 등 송이도는 해양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