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미도 숲길은 섬을 한바퀴 도는 옛길로, 어디에서 시작하든 시작과 끝이 같은 둘레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국내에서 가장 매력 있는 섬 둘레길로 재탄생했다. 북구,고운,청석,대판,순천,덕리,설풍,남구,사동 마을을 차례차례 거친다. 맷돌과 절구를 만들어 남해안 일대에 공급하던 청석마을 등 이미 폐촌이 된 마을이 절반에 달한다. 길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길에서 바라보는 마을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미도는 통영시에 속한 섬이지만 주변의 욕지도나 노대도 사람들과 달리 섬사람들의 생활권은 삼천포다. 통영보다 삼천포가 더 가까워서만이 아니다. 100여 년 전, 남해 출신 사람들이 처음 두미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남해 사람들은 또 대처인 삼천포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두미 섬사람들도 자연히 삼천포로 핏줄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5일장도 삼천포장을 보러 가고 수산물도 삼천포에 가서 판매한다. 4, 9장인 삼천포 장날에는 통영에서 오는 여객선이 삼천포까지 항로를 이어준다.
지금은 섬에 절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불교신자다. 교회가 있어도 신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욕지도나 노대도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 신자인 것과는 정반대다. 두미도 주민들은 두미도(頭尾島)의 본 이름이 둔미(屯彌)섬이었다는 말을 조상들에게 들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기사에도 둔미도(芚彌島)란 이름이 등장한다. 두미도 이전에는 섬의 이름이 둔미도였던 것이다. 둔미도란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란 뜻이다.
“연화세계를 알려거든 세존께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
두미도 인근에는 이 불교경전에서 비롯된 지명들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 욕지도, 연화도, 세존도, 그리고 두미도. 두미(頭尾)든 둔미(屯彌)든 모두 불교와 연관이 깊다. 두미도는 연화도 등과 함께 불교문화의 자장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섬인 것만은 명확하다. 1937년 두미도의 감로봉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회수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남해 금산에서 세존도, 두미도, 욕지, 연화도를 거쳐 미륵도까지 남해의 섬들은 이미 신라 때부터 불국토를 지향했던 것이다.
두미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속하는 섬으로, 통영항에서 서남쪽으로 34km 떨어져 있다. 섬 면적은 5.03㎢로 여의도의 1.7배 정도다. 욕지면에서 두번째로 크다. 두미(頭尾)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섬의 모양이 큰 머리(頭)에 작은 꼬리(尾)가 달려 있는 형상과 닮았다는 설과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란 뜻의 둔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남구와 북구에 각각 반 정도 나뉘어 살지만, 마을은 북구가 약간 더 크다. 일부 해안가와 섬 중앙의 천황봉(467m) 기슭에 마을들이 위태롭게 들어서 있다. 두미 북구마을도 급경사에 집들이 층계마다 서있는 형국이다. 마을을 오르는 길이 곧 등산로처럼 가파르다. 북구마을 건너편에 자리잡은 남구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두미도에는 섬에서 근무하는 ‘스마트워크센터’라는 섬택근무지가 생겼다. 구 어민회관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사무실이다. 이 곳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직원들이 순환하면서 근무한다. 섬마을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인데 직원들의 반응이 뜨겁다.
두미도 숲길은 섬을 한바퀴 도는 옛길로, 어디에서 시작하든 시작과 끝이 같은 둘레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국내에서 가장 매력 있는 섬 둘레길로 재탄생했다. 북구,고운,청석,대판,순천,덕리,설풍,남구,사동 마을을 차례차례 거친다. 맷돌과 절구를 만들어 남해안 일대에 공급하던 청석마을 등 이미 폐촌이 된 마을이 절반에 달한다. 길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길에서 바라보는 마을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미도는 통영시에 속한 섬이지만 주변의 욕지도나 노대도 사람들과 달리 섬사람들의 생활권은 삼천포다. 통영보다 삼천포가 더 가까워서만이 아니다. 100여 년 전, 남해 출신 사람들이 처음 두미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남해 사람들은 또 대처인 삼천포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두미 섬사람들도 자연히 삼천포로 핏줄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5일장도 삼천포장을 보러 가고 수산물도 삼천포에 가서 판매한다. 4, 9장인 삼천포 장날에는 통영에서 오는 여객선이 삼천포까지 항로를 이어준다.
지금은 섬에 절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불교신자다. 교회가 있어도 신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욕지도나 노대도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 신자인 것과는 정반대다. 두미도 주민들은 두미도(頭尾島)의 본 이름이 둔미(屯彌)섬이었다는 말을 조상들에게 들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기사에도 둔미도(芚彌島)란 이름이 등장한다. 두미도 이전에는 섬의 이름이 둔미도였던 것이다. 둔미도란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란 뜻이다.
“연화세계를 알려거든 세존께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
두미도 인근에는 이 불교경전에서 비롯된 지명들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 욕지도, 연화도, 세존도, 그리고 두미도. 두미(頭尾)든 둔미(屯彌)든 모두 불교와 연관이 깊다. 두미도는 연화도 등과 함께 불교문화의 자장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섬인 것만은 명확하다. 1937년 두미도의 감로봉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회수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남해 금산에서 세존도, 두미도, 욕지, 연화도를 거쳐 미륵도까지 남해의 섬들은 이미 신라 때부터 불국토를 지향했던 것이다.
두미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속하는 섬으로, 통영항에서 서남쪽으로 34km 떨어져 있다. 섬 면적은 5.03㎢로 여의도의 1.7배 정도다. 욕지면에서 두번째로 크다. 두미(頭尾)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섬의 모양이 큰 머리(頭)에 작은 꼬리(尾)가 달려 있는 형상과 닮았다는 설과 ‘미륵이 머물다간 섬’이란 뜻의 둔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남구와 북구에 각각 반 정도 나뉘어 살지만, 마을은 북구가 약간 더 크다. 일부 해안가와 섬 중앙의 천황봉(467m) 기슭에 마을들이 위태롭게 들어서 있다. 두미 북구마을도 급경사에 집들이 층계마다 서있는 형국이다. 마을을 오르는 길이 곧 등산로처럼 가파르다. 북구마을 건너편에 자리잡은 남구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두미도에는 섬에서 근무하는 ‘스마트워크센터’라는 섬택근무지가 생겼다. 구 어민회관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사무실이다. 이 곳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직원들이 순환하면서 근무한다. 섬마을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인데 직원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