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안의 섬, 가파도. 가파도는 한국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해마다 봄이면 17만 평의 보리밭이 청보리로 물든다. 바람이 부는 날엔 청보리 푸른 물결이 가파도 들녘을 넘실거린다. 보리싹부터 익은 보리까지 보리밭 길은 우리를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자로 만들어준다. 제주 올레 10-1코스로 지정된 가파도 올레길은 느리게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가파도는 머물렀을 때 작은 섬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 20.5m. 이 나라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서남쪽으로 5.5Km 거리에 있다.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 지점. 마라도보다 두 배 반 정도 크다. 가파도에는 제주 올레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길이 있다. 백섬백길에서는 59코스로 선정했다. 상동포구를 출발해 냇골챙이 앞, 개엄주리코지, 큰옹진물, 가파 치안센터까지 이어지는 4.4km의 더없이 평탄한 길이다. 언뜻 보면 섬은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지만 가파도의 사람살이 내력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될 정도로 유구하다. 가파도에서는 고인돌과 제주 유일의 선돌을 비롯해 패총, 공이, 흠돌, 돌도끼, 적갈색경질무문토기 등 다수의 선사 유물들이 발견됐다. 고인돌은 57기가 발견돼 제주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길이 7m, 무게 30t의 대형 고인돌도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가파도의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판석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묘실을 만든 다음 작은 굄돌을 놓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왕돌의 나라. 고인돌은 지배자들의 무덤이다. 안타깝게도 이 손바닥만한 섬에도 그 옛날부터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살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가파도는 말 목장과 국가 제사에 쓸 흑우 목장으로 사용됐다. 1751년에는 103마리, 1793년에는 75마리. 1823년 104마리, 1843년에는 72마리의 검은 소가 있었다고 한다. 1840년에는 영국 함선 2척이 가파도에 대포를 발포하고 흑우를 약탈해 가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제주목사가 파면됐다. 가파도는 조선시대 내내 주민 거주가 금지되다가 1842년 경작이 허가됐고 1863년부터 거주가 허가됐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 어민들이 가파도 바다의 전복을 싹쓸이 해가기 시작했다. 1887년 8월 17일에는 가파도에서 전복을 채취하던 일본어선 6척이 모슬포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고 주민을 주민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1901년에는 가파도에 일본 어민 70여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때 이미 가파도는 욕지도, 거문도 등 남해안 섬들과 함께 일제의 식민 어촌이 되었다.
가파포구 입구부터 섬은 성게 향으로 가득하다. 해녀들은 잠수복도 벗지 않은 채 선창가 건물 그늘에 앉아 성게 작업 중이다. 해녀들은 집 마당에서도 성게 알을 깐다. 가파도에는 상동과 하동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하동 마을이 조금 더 크다. 상동과 하동 사이 들판은 봄이면 온통 청보리밭이다. 봄이면 청보리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마을의 공동묘지는 상동과 하동 사이 북쪽 해안가에 있다. 삶의 이면 도로는 묘지들로 가득하다. 이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다. 묘지의 주인들은 끝내 평생 자맥질하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 곁에 누웠다. 가파도의 신당인 상동마을 할망당(매부리당)도 이 길가에 있다. 상동 포구 주변에는 작은이끈여, 평풍덕과 이개덕, 개엄주리코지, 큰옹짓물 등이 있다. 등대는 하동 남부르코지에 있다.
패총은 상동포구 선착장 부근에 있다. 시간은 사람이 먹고 남긴 쓸모없는 조개껍질들, 쓰레기마저 귀중한 유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시간은 삶을 지배하는 유일신이고 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신이다. 아무리 하찮다고 여겨지는 삶도 시간의 주재 하에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사소한 것 하나도 돌이켜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가파도는 바람의 왕국이다. 가파도,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선 집담이나 밭담들은 외줄로 쌓은 돌담이다. 언뜻 튼튼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 숭숭 뚫린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돌담은 저 구멍으로 바람을 분산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온 것이다.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어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만들어 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
섬 안의 섬, 가파도. 가파도는 한국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해마다 봄이면 17만 평의 보리밭이 청보리로 물든다. 바람이 부는 날엔 청보리 푸른 물결이 가파도 들녘을 넘실거린다. 보리싹부터 익은 보리까지 보리밭 길은 우리를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자로 만들어준다. 제주 올레 10-1코스로 지정된 가파도 올레길은 느리게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가파도는 머물렀을 때 작은 섬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 20.5m. 이 나라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서남쪽으로 5.5Km 거리에 있다.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 지점. 마라도보다 두 배 반 정도 크다. 가파도에는 제주 올레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길이 있다. 백섬백길에서는 59코스로 선정했다. 상동포구를 출발해 냇골챙이 앞, 개엄주리코지, 큰옹진물, 가파 치안센터까지 이어지는 4.4km의 더없이 평탄한 길이다. 언뜻 보면 섬은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지만 가파도의 사람살이 내력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될 정도로 유구하다. 가파도에서는 고인돌과 제주 유일의 선돌을 비롯해 패총, 공이, 흠돌, 돌도끼, 적갈색경질무문토기 등 다수의 선사 유물들이 발견됐다. 고인돌은 57기가 발견돼 제주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길이 7m, 무게 30t의 대형 고인돌도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가파도의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판석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묘실을 만든 다음 작은 굄돌을 놓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왕돌의 나라. 고인돌은 지배자들의 무덤이다. 안타깝게도 이 손바닥만한 섬에도 그 옛날부터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살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가파도는 말 목장과 국가 제사에 쓸 흑우 목장으로 사용됐다. 1751년에는 103마리, 1793년에는 75마리. 1823년 104마리, 1843년에는 72마리의 검은 소가 있었다고 한다. 1840년에는 영국 함선 2척이 가파도에 대포를 발포하고 흑우를 약탈해 가기도 했는데 이 사건으로 제주목사가 파면됐다. 가파도는 조선시대 내내 주민 거주가 금지되다가 1842년 경작이 허가됐고 1863년부터 거주가 허가됐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 어민들이 가파도 바다의 전복을 싹쓸이 해가기 시작했다. 1887년 8월 17일에는 가파도에서 전복을 채취하던 일본어선 6척이 모슬포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고 주민을 주민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1901년에는 가파도에 일본 어민 70여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때 이미 가파도는 욕지도, 거문도 등 남해안 섬들과 함께 일제의 식민 어촌이 되었다.
가파포구 입구부터 섬은 성게 향으로 가득하다. 해녀들은 잠수복도 벗지 않은 채 선창가 건물 그늘에 앉아 성게 작업 중이다. 해녀들은 집 마당에서도 성게 알을 깐다. 가파도에는 상동과 하동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하동 마을이 조금 더 크다. 상동과 하동 사이 들판은 봄이면 온통 청보리밭이다. 봄이면 청보리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마을의 공동묘지는 상동과 하동 사이 북쪽 해안가에 있다. 삶의 이면 도로는 묘지들로 가득하다. 이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다. 묘지의 주인들은 끝내 평생 자맥질하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 곁에 누웠다. 가파도의 신당인 상동마을 할망당(매부리당)도 이 길가에 있다. 상동 포구 주변에는 작은이끈여, 평풍덕과 이개덕, 개엄주리코지, 큰옹짓물 등이 있다. 등대는 하동 남부르코지에 있다.
패총은 상동포구 선착장 부근에 있다. 시간은 사람이 먹고 남긴 쓸모없는 조개껍질들, 쓰레기마저 귀중한 유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시간은 삶을 지배하는 유일신이고 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신이다. 아무리 하찮다고 여겨지는 삶도 시간의 주재 하에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사소한 것 하나도 돌이켜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가파도는 바람의 왕국이다. 가파도,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선 집담이나 밭담들은 외줄로 쌓은 돌담이다. 언뜻 튼튼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 숭숭 뚫린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돌담은 저 구멍으로 바람을 분산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온 것이다.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어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만들어 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