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는 고려시대 바다에서 불쑥 솟아났다는 전설의 화산섬이다. 비양도 둘레길은 비양도 해안과 비양봉을 한바퀴 도는 평이한 길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한 바퀴 돌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섬을 걷는 내내 차를 마주 치지 않고 온전히 걷기에만 몰두 할 수 있는 비양도는 걷기의 천국이다.
제주에서도 푸르기로 소문난 비양도 앞 바다는 온통 청보석 물빛이다. 비양도는 고려 시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고적’에는 “고려 목종 10년(1007년),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니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살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서산이 정확히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비양도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그래서 지난 2002년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어느 곳이 됐건 11세기 초 고려 목종 재위 기간에 화산 활동으로 제주 바다에서 섬 하나가 생겨났거나 화산 활도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중국에서 한 오름이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서산이 비양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2003년 비양도에서는 학술조사 과정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 갑자기 솟아난 섬이 아니다. 그래도 역사적 기록은 당시에 비양도나 그 인근 지역에서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 만은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화산 활동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섬이 솟아오른 사건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바다에서 산이 솟아나고 지옥의 유황처럼 끓는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용의 승천이나 봉황의 출현 따위의 전설도 더 이상 전설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바다 속에서 땅도 솟아오르는데 어찌 용왕이 조화를 부려 비구름을 몰고 오고 풍랑을 일으킨다는 것 따위 소소한 일을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당오백 절오백’ 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에 유독 ‘할망당’을 비롯한 신당과 토속 신앙이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는 섬이자 기생화산이다. 제주 한림에서 5km, 협재에서는 3km 거리에 있다. 면적 0.5㎢, 해발 114.7m, 동서 길이 1.02㎞, 남북 길이 1.13㎞. 죽도라고도 한다. 섬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며, 서북∼남서 방향의 아치형 능선을 중심으로 동북 사면이 남서 사면보다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섬 중앙에는 높이 114m의 비양봉과 2개의 분화구가 있다. 주민은 100여 명 남짓이고, 섬에는 일주 도로가 나 있다. 오름 주변 해안에는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하는 부아석(負兒石)과 베개용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있다. ‘애기 업은 돌’은 아이를 업고 서 있는 듯한 바위의 형상때문에 바위에 지성을 드리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펄낭’이라는 염습지가 있고, 북쪽의 분화구 주변에는 비양도에서만 자라는 비양나무(쐐기풀과의 낙엽관목)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8호 비양나무 자생지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유일의 비양나무 자생지로 보호되고 있다.
비양도에는 19세기 말(고종 13년)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이 처음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고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많은 섬들처럼 그보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 것이다.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이 그 증거다. 또 고려시대 말에 해상 방어를 위해 망수(望守)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선사이래 비양도에서도 내내 사람들이 터전을 일구고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비양도는 고려시대 바다에서 불쑥 솟아났다는 전설의 화산섬이다. 비양도 둘레길은 비양도 해안과 비양봉을 한바퀴 도는 평이한 길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한 바퀴 돌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섬을 걷는 내내 차를 마주 치지 않고 온전히 걷기에만 몰두 할 수 있는 비양도는 걷기의 천국이다.
제주에서도 푸르기로 소문난 비양도 앞 바다는 온통 청보석 물빛이다. 비양도는 고려 시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고적’에는 “고려 목종 10년(1007년),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니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살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서산이 정확히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비양도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그래서 지난 2002년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어느 곳이 됐건 11세기 초 고려 목종 재위 기간에 화산 활동으로 제주 바다에서 섬 하나가 생겨났거나 화산 활도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중국에서 한 오름이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서산이 비양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2003년 비양도에서는 학술조사 과정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 갑자기 솟아난 섬이 아니다. 그래도 역사적 기록은 당시에 비양도나 그 인근 지역에서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 만은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화산 활동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섬이 솟아오른 사건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바다에서 산이 솟아나고 지옥의 유황처럼 끓는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용의 승천이나 봉황의 출현 따위의 전설도 더 이상 전설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바다 속에서 땅도 솟아오르는데 어찌 용왕이 조화를 부려 비구름을 몰고 오고 풍랑을 일으킨다는 것 따위 소소한 일을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당오백 절오백’ 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에 유독 ‘할망당’을 비롯한 신당과 토속 신앙이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는 섬이자 기생화산이다. 제주 한림에서 5km, 협재에서는 3km 거리에 있다. 면적 0.5㎢, 해발 114.7m, 동서 길이 1.02㎞, 남북 길이 1.13㎞. 죽도라고도 한다. 섬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며, 서북∼남서 방향의 아치형 능선을 중심으로 동북 사면이 남서 사면보다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섬 중앙에는 높이 114m의 비양봉과 2개의 분화구가 있다. 주민은 100여 명 남짓이고, 섬에는 일주 도로가 나 있다. 오름 주변 해안에는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하는 부아석(負兒石)과 베개용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있다. ‘애기 업은 돌’은 아이를 업고 서 있는 듯한 바위의 형상때문에 바위에 지성을 드리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펄낭’이라는 염습지가 있고, 북쪽의 분화구 주변에는 비양도에서만 자라는 비양나무(쐐기풀과의 낙엽관목)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8호 비양나무 자생지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유일의 비양나무 자생지로 보호되고 있다.
비양도에는 19세기 말(고종 13년)에 와서야 비로소 사람이 처음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고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많은 섬들처럼 그보다 훨씬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 것이다.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이 그 증거다. 또 고려시대 말에 해상 방어를 위해 망수(望守)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선사이래 비양도에서도 내내 사람들이 터전을 일구고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