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에는 장장 42.7km에 달하는 5개 코스의 모실길이 있다. 그 중에서 ‘천년의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1번째 코스가 걷기에 좋다. 증도 모실길 제1구간은 짱뚱어 다리를 건너 소나무 숲을 지나 드넓은 우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천년의 숲길은 무려 10만 그루의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로,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푹신푹신하다. 증도면 상정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그 모양이 한반도를 닮았다.
700년 전 침몰한 선박에서 쏟아진 유물로 유명세를 탔던 보물섬 증도. 증도의 진짜 보물은 사실 갯벌과 염전이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와 염전 문화의 우수성때문에 증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기도 했다.
증도가 보물섬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75년 검산마을 한 어부의 그물에 그릇이 걸려 올라오면서 부터다. 어부는 부서진 그릇들은 버리고 그 중 쓸만한 그릇은 주어다 개밥 그릇으로 사용했다. 그 개밥 그릇이 범상치 않은 그릇임을 알아본 이는 육지에서 온 엿장수와 도굴꾼이었다. 그 개밥 그릇은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 때 만들어진 도자기였다. 꾼들 사이에 증도는 보물섬이란 소문이 퍼져나갔다.
1976년 1월, 다시 검산마을 어부의 그물에 중국 룽취안요[龍泉窯]의 청자(靑瓷)가 올라왔다. 이를 이상케 여긴 어부의 신고를 접수한 정부는 발굴단을 구성하여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은 1984년까지 11차례 진행했다. 발굴 장소는 수심은 20m 이상이고, 탁류인데다 해류가 급하게 흘러 시계(視界)가 없는 해저였다. 인양 작업을 통해 20,661점의 도자기류 유물과 금속제품 729점, 석제품 43점, 동전 28톤 18킬로그램 등 실로 엄청난 양의 해저유물이 발굴되었다. 1323년에 가까운 시기에 침몰했을 그 배는 신안선으로 명명되어졌다. 보물선이 발굴된 해역은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부터 증도는 보물섬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2010년 3월 연륙교로 내륙과 연결된 섬 아닌 섬 증도. 증도는 2007년 12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증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갯벌 생태와 염전 문화의 우수성 때문이다. 단일 염전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태평염전이 있다. 이 염전은 여의도 면적의 두 배인 462만㎡나 된다. 태평염전 외에도 증도 인근에는 크고 작은 염전들이 산재해 있다.
갯벌에는 갯지렁이와 짱뚱어는 물론 풀게, 농게 등 다양한 종류의 게들과 백합 등의 조개류를 비롯한 100여 종 이상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 퉁퉁마디, 순비기나무 등 다양한 염생 식물도 자라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2008년 6월에는 한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5월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또 2011년 9월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700여 년 전인 중국 송, 원대 해저 유물 발굴로 보물섬으로 불리고 있는 증도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것이다.
증도는 면적 40.03㎢의 땅에 16개 마을, 약 2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증도를 본섬으로 하는 증도면은 8개의 유인도와 93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증도의 본 이름은 시루섬 혹은 시리섬이다. 떡시루가 바닥이 숭숭 뚫려 물이 새듯이 증도 땅의 물이 새버려 물이 귀하다 해서 시루섬이라 했다고 한다. 원뜻대로라면 시루 증(甑)자를 써야 옳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한자 표기 과정에서 ‘증도(曾島)’가 돼버렸다. 본래 세 개의 섬이었는데 전증도와 후증도, 대초도 세 섬 사이 갯벌이 간척되면서 하나가 된 것이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증도는 언제든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보물같은 섬이다.
증도에는 장장 42.7km에 달하는 5개 코스의 모실길이 있다. 그 중에서 ‘천년의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1번째 코스가 걷기에 좋다. 증도 모실길 제1구간은 짱뚱어 다리를 건너 소나무 숲을 지나 드넓은 우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천년의 숲길은 무려 10만 그루의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로,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푹신푹신하다. 증도면 상정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그 모양이 한반도를 닮았다.
700년 전 침몰한 선박에서 쏟아진 유물로 유명세를 탔던 보물섬 증도. 증도의 진짜 보물은 사실 갯벌과 염전이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와 염전 문화의 우수성때문에 증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기도 했다.
증도가 보물섬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75년 검산마을 한 어부의 그물에 그릇이 걸려 올라오면서 부터다. 어부는 부서진 그릇들은 버리고 그 중 쓸만한 그릇은 주어다 개밥 그릇으로 사용했다. 그 개밥 그릇이 범상치 않은 그릇임을 알아본 이는 육지에서 온 엿장수와 도굴꾼이었다. 그 개밥 그릇은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 때 만들어진 도자기였다. 꾼들 사이에 증도는 보물섬이란 소문이 퍼져나갔다.
1976년 1월, 다시 검산마을 어부의 그물에 중국 룽취안요[龍泉窯]의 청자(靑瓷)가 올라왔다. 이를 이상케 여긴 어부의 신고를 접수한 정부는 발굴단을 구성하여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은 1984년까지 11차례 진행했다. 발굴 장소는 수심은 20m 이상이고, 탁류인데다 해류가 급하게 흘러 시계(視界)가 없는 해저였다. 인양 작업을 통해 20,661점의 도자기류 유물과 금속제품 729점, 석제품 43점, 동전 28톤 18킬로그램 등 실로 엄청난 양의 해저유물이 발굴되었다. 1323년에 가까운 시기에 침몰했을 그 배는 신안선으로 명명되어졌다. 보물선이 발굴된 해역은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부터 증도는 보물섬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2010년 3월 연륙교로 내륙과 연결된 섬 아닌 섬 증도. 증도는 2007년 12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증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갯벌 생태와 염전 문화의 우수성 때문이다. 단일 염전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태평염전이 있다. 이 염전은 여의도 면적의 두 배인 462만㎡나 된다. 태평염전 외에도 증도 인근에는 크고 작은 염전들이 산재해 있다.
갯벌에는 갯지렁이와 짱뚱어는 물론 풀게, 농게 등 다양한 종류의 게들과 백합 등의 조개류를 비롯한 100여 종 이상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 퉁퉁마디, 순비기나무 등 다양한 염생 식물도 자라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2008년 6월에는 한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5월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또 2011년 9월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700여 년 전인 중국 송, 원대 해저 유물 발굴로 보물섬으로 불리고 있는 증도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것이다.
증도는 면적 40.03㎢의 땅에 16개 마을, 약 2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증도를 본섬으로 하는 증도면은 8개의 유인도와 93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증도의 본 이름은 시루섬 혹은 시리섬이다. 떡시루가 바닥이 숭숭 뚫려 물이 새듯이 증도 땅의 물이 새버려 물이 귀하다 해서 시루섬이라 했다고 한다. 원뜻대로라면 시루 증(甑)자를 써야 옳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한자 표기 과정에서 ‘증도(曾島)’가 돼버렸다. 본래 세 개의 섬이었는데 전증도와 후증도, 대초도 세 섬 사이 갯벌이 간척되면서 하나가 된 것이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증도는 언제든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보물같은 섬이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