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섬 박지도와 반월도는 모두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있지만, 걷기에는 박지도가 낫다. 반월도는 포장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지나 퍼플교를 건너면 박지도다. 여기서 해안가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걸어 바람의 언덕까지 갔다가, 박지당숲을 거쳐 원출발지로 돌아오는 길이 반월박지도 둘레길이다. 만일 반월도까지 더 길게 걷고 싶은면, 아스타정원으로 내려와서 박지~반월간 인도교를 건너 반월도로 가면된다. 여기서 반월도 해안을 따라 마을을 거쳐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된다. 네 시간 정도면 두 섬 모두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반월박지도는 반월도와 박지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안좌도 남쪽 끝자락에 마주 보고 있는 형제섬이다. 오랜 옛날 박지도의 암자에는 젊은 비구 한 사람이 수도 생활을 하며 살았다. 건너 섬 반월도에는 젊은 비구니 혼자 수도 중이었다. 두 섬 사이에는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으나 남녀 두 스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아른거리는 자태만을 보고도 박지도의 비구는 반월도의 비구니를 사모하게 됐다. 달빛 교교한 밤이면 낭랑하게 들리는 비구니의 목탁 소리에 비구는 애가 끓었다. 견디다 못한 비구는 어느 날부터 망태기에 돌들을 담아다 반월도를 향해 난 갯벌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바다라도 메울 심산이었을까.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날 때마다 비구는 돌을 담아 날랐고 그렇게 몇 해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마음이 통한 것일까. 이를 눈치챈 비구니도 광주리에 돌을 담아 머리에 이고 박지도 쪽 갯벌을 향해 부어 나갔다. 그렇게 또 많은 세월이 지났다. 청춘의 두 남녀 스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마침내 양쪽에서 시작된 갯벌의 두 돌무더기 길이 하나로 만났다. 기쁨에 겨운 초로의 두 남녀는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어느덧 들물의 시간, 바닷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으나 둘은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급류에 휩쓸려 가고 말았다. 다시 한 번의 물때가 지나고 바닷물이 빠지자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남게 됐다.
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주던 갯벌의 징검다리인 ‘중노두’에 얽힌 이야기다. 두 섬은 이제 ‘천사의 다리’라는 인도교로 이어져 있어 더 이상 중노두를 건널 일은 없다. 그리움이 놓은 징검다리, 중노두. 썰물 때면 두 섬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노둣길을 걸어서 교류했다. 그래서 해마다 이끼가 낀 돌들을 뒤집어주며 관리해왔다. 하지만 교통의 발달로 관리가 끊어지자 중노두는 소멸해 버리고 그 이야기와 돌무더기 일부만 남았다.
이웃의 큰 섬 안좌도까지도 인도교로 연결돼 섬들 사이의 교통은 한결 수월해졌다. 박지도와 반월도에는 중노두의 전설을 낳게 한 암자 터가 남아 있다. 박지도의 비구스님 암자 터는 반월도 당산 중턱, 절골에 있고 반월도의 암자 터는 개논에서 대덕산에 이르는 중턱, 십새미 부근에 있다. 십새미는 샘(우물)인데 샘의 형상이 여성의 성기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르지 않는 청춘처럼 이곳에서는 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모두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잘 닦여 있다. 두 섬을 모두 돌아도 서너 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섬은 아담하다. 섬 둘레길을 걸으며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감동은 광대한 갯벌이다. 이 갯벌에서 섬사람들은 낙지를 잡고 김 양식을 하고 전복을 키우며 살아간다. 갯벌은 섬사람들의 직장이다. 섬사람들에게 먹이를 주는 갯벌이니 갯벌은 곧 섬의 생명줄이다. 이 갯벌에서는 하루 두 번씩 기적이 연출된다. 두 번의 썰물 때면 바다가 통째로 사라져 갯벌이 다 드러나고 밀물이면 사라졌던 바다가 다시 나타난다. 1년에 한 번 드러나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모세의 기적이라 일컬어지지만 이 갯벌에서는 모세의 기적이 날마다 일어난다. 반월도 박지도 갯벌에서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이다.
중노두 전설이 깃든 박지도 뒷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당숲이 있다. 지금은 더 이상 당제를 모시지 않지만 당숲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섬이었지만 섬의 신전인 박지도 당숲은 인근 섬들에서도 영험하기로 유명했다 한다. 매년 정월, 당제를 모실 때가 오면 마을에서는 흠결 없이 깨끗한 소를 한 마리 사다가 제물로 썼다. 그런데 당시 이웃 섬들에는 소 장수가 박지도 당제의 제물로 낙점된 소를 팔지 않으면 당할머니가 벌로 그 소를 말려죽이고 만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한다. 어떤 소 장수도 자신의 소가 박지도 당의 제물로 낙점되면 팔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박지도 당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박지도는 마을이 하나지만 반월도에는 퇴촌과 반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한때는 김 양식이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전복 양식, 낙지잡이를 하며 살아간다. 큰 마을인 반월마을 초입에는 반월도 당숲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신령한 느낌이 가득하다. 느릅나무, 팽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송악, 마삭줄 고목이 성성한 당숲. 옛날 반월 마을 주민들도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숲에서 당할머니 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지금은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다.
반월도에는 물 위를 걷는 어부들이 산다! 어부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물 위를 걷는 기적쯤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는 걸까! 아직도 섬에 남아 있는 전통어로인 숭어 후리질 풍경이다. 참으로 살아 있는 문화재다. 어부들은 긴 장대를 들고 바닷물 표면을 후려친다. 얕은 바다, 뻘밭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군데로 몰아간 뒤 그물로 포획하는 어법이다. 숭어 갯치기도 비슷한 전통 어로다. 썰물 때 물이 빠진 갯고랑 양쪽에 그물을 쳐 놓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닷물 표면을 긴 장대로 내려친다. 여름에는 물고기들이 주로 수면 가까이 떠다니기 때문에 그물을 쳐 놔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런 물고기를 포획하는 방법이 갯치기다. 장대로 바다를 후려치면 놀란 물고기들이 물속 깊이 숨어서 도망가다가 걸려드는 것이다. 반월도는 전통 어업의 보고다.
요새 숭어는 흔한 물고기라 별 대접을 못 받는 편이지만 이름인 ‘숭어(崇魚)’나 옛 이름인 ‘수어(秀魚)’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하찮은 물고기가 아니다. 오히려 숭상(崇)받던 빼어난(秀) 물고기였다. 철에 따라 맛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천대받기도 하지만 참숭어든 가숭어든 제철에는 다른 어느 생선보다 맛이 뛰어나다. 숭어를 부르는 이름은 지역과 크기에 따라 다양하다. 밀치, 몬치, 넘금이, 글거지, 애정이, 무근사슬, 미렁이, 덜미, 나무래미, 걸치기, 객얼숭어, 댕기리, 덜미, 뚝다리, 모그래기, 모대미, 모쟁이, 숭애 등 그 이름만 무려 100여 가지에 이른다. 신안 지역에선 가장 큰 것은 숭어 그 다음은 동애, 그 다음은 못치, 가장 작은 새끼는 곡사리라 부른다.
숭어는 이름 때문에 논란이 많은 물고기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논쟁거리는 어떤 것이 가숭어고 참숭어냐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참숭어라 부르는 것을 또 다른 지역에서는 가숭어라 부른다. 엄연히 숭어란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숭어로 둔갑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더 맛있어서 참숭어가 아니듯 덜 맛있어서 가숭어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쪽이든 제철이면 맛이 뛰어나고 철이 지나면 맛이 없다. 논란은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과 함께 이름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가숭어에 참숭어란 이름을 달아주면서 혼란이 생긴 때문이다. 가숭어가 참숭어로 불리면서 멀쩡히 숭어라 불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가숭어로 뒤바뀌어 버리기도 했다.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생물종다양성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숭어와 가숭어의 분류법이 숭어는 머리가 납작하고 까만 눈동자 주변 눈자위가 희고 가숭어는 눈을 덮은 작은 기름 눈까풀이 노랗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신안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것을 참숭어로, 흰 것을 가숭어로 부른다. 수산과학원 분류와 정반대다. 경남 통영에서도 눈자위가 노란 것을 밀치 혹은 참숭어라 하고 눈자위 검은 것은 그냥 숭어라 한다.
신안의 흑산도에서 저술된 자산어보에도 ‘(참)숭어는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 작은 것을 속칭 등기리(登其里)라 하고 어린 것을 모치(毛峙)라고 한다. 또 가숭어는 눈이 까맣고 민첩하다’고 돼 있다. 반월도에서도 눈이 노란 참숭어는 제사상에 올라가지만 가숭어는 제사상에 못 올라간다. 정리를 한다고 해 봤지만 독자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제철 맛있을 때 먹으면 된다. 쉬운 결론. 눈자위가 노란 숭어는 겨울철이 맛있고 눈자위가 까만 숭어는 오뉴월 보리가 노래질 무렵부터 여름까지 맛있다. 그래서 보리 숭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 기준은 못 된다. 생선은 서식지에 따라 맛있는 철이 다르기도 한 까닭이다. 고흥의 백일도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참숭어가 겨울이 제철인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가숭어는 보리누름 때가 아니라 가을이 맛나다. 백일도에서는 가숭어를 넘금이라 하는데 가을 넘금이로 미역국을 끓이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반월도에서는 또 밤이면 ‘뜰빵 낚시’라는 전통 어법으로 장어를 잡는데 이 낚시에는 바늘이 없다. 그런데도 더 많은 장어를 잡을 수 있다. 낚시코에 걸린 장어를 떼어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곧은 낚시다. 일자로 된 쇠막대기 옆에 갯지렁이를 끼운 낚싯줄을 매단다. 일자로 된 쇠막대와 미끼가 한몸처럼 붙어서 바닷속으로 내려가면 장어가 달려들어 미끼와 쇠막대를 꽉 문다. 장어는 탐욕스러워 한번 문 미끼를 좀처럼 놓지 않는다. 장어의 욕심을 역이용한 어로법이다. 장어가 물었다 싶을 때 힘껏 낚아채서 배 위로 끌어올리면 장어는 그대로 어선 바닥에 떨어진다. 잡아 올릴 때 어선의 선체에 장어가 닿으면 놀라서 떨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선체에 닿지 않게 조심스레 잡아 올리는 것이 기술이다. 반월도에 이런 보물 같은 전통 어로들이 아직도 전승되고 있는 것은 갯벌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퍼플섬으로 유명해진 반월박지도는 2021년엔 유엔 산하 세계관광기구(UNWTO)에 의해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선정되었다.
퍼플섬 박지도와 반월도는 모두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있지만, 걷기에는 박지도가 낫다. 반월도는 포장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지나 퍼플교를 건너면 박지도다. 여기서 해안가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걸어 바람의 언덕까지 갔다가, 박지당숲을 거쳐 원출발지로 돌아오는 길이 반월박지도 둘레길이다. 만일 반월도까지 더 길게 걷고 싶은면, 아스타정원으로 내려와서 박지~반월간 인도교를 건너 반월도로 가면된다. 여기서 반월도 해안을 따라 마을을 거쳐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된다. 네 시간 정도면 두 섬 모두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반월박지도는 반월도와 박지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안좌도 남쪽 끝자락에 마주 보고 있는 형제섬이다. 오랜 옛날 박지도의 암자에는 젊은 비구 한 사람이 수도 생활을 하며 살았다. 건너 섬 반월도에는 젊은 비구니 혼자 수도 중이었다. 두 섬 사이에는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으나 남녀 두 스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아른거리는 자태만을 보고도 박지도의 비구는 반월도의 비구니를 사모하게 됐다. 달빛 교교한 밤이면 낭랑하게 들리는 비구니의 목탁 소리에 비구는 애가 끓었다. 견디다 못한 비구는 어느 날부터 망태기에 돌들을 담아다 반월도를 향해 난 갯벌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바다라도 메울 심산이었을까.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날 때마다 비구는 돌을 담아 날랐고 그렇게 몇 해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마음이 통한 것일까. 이를 눈치챈 비구니도 광주리에 돌을 담아 머리에 이고 박지도 쪽 갯벌을 향해 부어 나갔다. 그렇게 또 많은 세월이 지났다. 청춘의 두 남녀 스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마침내 양쪽에서 시작된 갯벌의 두 돌무더기 길이 하나로 만났다. 기쁨에 겨운 초로의 두 남녀는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어느덧 들물의 시간, 바닷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으나 둘은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급류에 휩쓸려 가고 말았다. 다시 한 번의 물때가 지나고 바닷물이 빠지자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남게 됐다.
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주던 갯벌의 징검다리인 ‘중노두’에 얽힌 이야기다. 두 섬은 이제 ‘천사의 다리’라는 인도교로 이어져 있어 더 이상 중노두를 건널 일은 없다. 그리움이 놓은 징검다리, 중노두. 썰물 때면 두 섬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노둣길을 걸어서 교류했다. 그래서 해마다 이끼가 낀 돌들을 뒤집어주며 관리해왔다. 하지만 교통의 발달로 관리가 끊어지자 중노두는 소멸해 버리고 그 이야기와 돌무더기 일부만 남았다.
이웃의 큰 섬 안좌도까지도 인도교로 연결돼 섬들 사이의 교통은 한결 수월해졌다. 박지도와 반월도에는 중노두의 전설을 낳게 한 암자 터가 남아 있다. 박지도의 비구스님 암자 터는 반월도 당산 중턱, 절골에 있고 반월도의 암자 터는 개논에서 대덕산에 이르는 중턱, 십새미 부근에 있다. 십새미는 샘(우물)인데 샘의 형상이 여성의 성기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르지 않는 청춘처럼 이곳에서는 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모두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잘 닦여 있다. 두 섬을 모두 돌아도 서너 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섬은 아담하다. 섬 둘레길을 걸으며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감동은 광대한 갯벌이다. 이 갯벌에서 섬사람들은 낙지를 잡고 김 양식을 하고 전복을 키우며 살아간다. 갯벌은 섬사람들의 직장이다. 섬사람들에게 먹이를 주는 갯벌이니 갯벌은 곧 섬의 생명줄이다. 이 갯벌에서는 하루 두 번씩 기적이 연출된다. 두 번의 썰물 때면 바다가 통째로 사라져 갯벌이 다 드러나고 밀물이면 사라졌던 바다가 다시 나타난다. 1년에 한 번 드러나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모세의 기적이라 일컬어지지만 이 갯벌에서는 모세의 기적이 날마다 일어난다. 반월도 박지도 갯벌에서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이다.
중노두 전설이 깃든 박지도 뒷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당숲이 있다. 지금은 더 이상 당제를 모시지 않지만 당숲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섬이었지만 섬의 신전인 박지도 당숲은 인근 섬들에서도 영험하기로 유명했다 한다. 매년 정월, 당제를 모실 때가 오면 마을에서는 흠결 없이 깨끗한 소를 한 마리 사다가 제물로 썼다. 그런데 당시 이웃 섬들에는 소 장수가 박지도 당제의 제물로 낙점된 소를 팔지 않으면 당할머니가 벌로 그 소를 말려죽이고 만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한다. 어떤 소 장수도 자신의 소가 박지도 당의 제물로 낙점되면 팔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박지도 당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박지도는 마을이 하나지만 반월도에는 퇴촌과 반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한때는 김 양식이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전복 양식, 낙지잡이를 하며 살아간다. 큰 마을인 반월마을 초입에는 반월도 당숲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신령한 느낌이 가득하다. 느릅나무, 팽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송악, 마삭줄 고목이 성성한 당숲. 옛날 반월 마을 주민들도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숲에서 당할머니 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지금은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다.
반월도에는 물 위를 걷는 어부들이 산다! 어부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물 위를 걷는 기적쯤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는 걸까! 아직도 섬에 남아 있는 전통어로인 숭어 후리질 풍경이다. 참으로 살아 있는 문화재다. 어부들은 긴 장대를 들고 바닷물 표면을 후려친다. 얕은 바다, 뻘밭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군데로 몰아간 뒤 그물로 포획하는 어법이다. 숭어 갯치기도 비슷한 전통 어로다. 썰물 때 물이 빠진 갯고랑 양쪽에 그물을 쳐 놓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닷물 표면을 긴 장대로 내려친다. 여름에는 물고기들이 주로 수면 가까이 떠다니기 때문에 그물을 쳐 놔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런 물고기를 포획하는 방법이 갯치기다. 장대로 바다를 후려치면 놀란 물고기들이 물속 깊이 숨어서 도망가다가 걸려드는 것이다. 반월도는 전통 어업의 보고다.
요새 숭어는 흔한 물고기라 별 대접을 못 받는 편이지만 이름인 ‘숭어(崇魚)’나 옛 이름인 ‘수어(秀魚)’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하찮은 물고기가 아니다. 오히려 숭상(崇)받던 빼어난(秀) 물고기였다. 철에 따라 맛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천대받기도 하지만 참숭어든 가숭어든 제철에는 다른 어느 생선보다 맛이 뛰어나다. 숭어를 부르는 이름은 지역과 크기에 따라 다양하다. 밀치, 몬치, 넘금이, 글거지, 애정이, 무근사슬, 미렁이, 덜미, 나무래미, 걸치기, 객얼숭어, 댕기리, 덜미, 뚝다리, 모그래기, 모대미, 모쟁이, 숭애 등 그 이름만 무려 100여 가지에 이른다. 신안 지역에선 가장 큰 것은 숭어 그 다음은 동애, 그 다음은 못치, 가장 작은 새끼는 곡사리라 부른다.
숭어는 이름 때문에 논란이 많은 물고기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논쟁거리는 어떤 것이 가숭어고 참숭어냐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참숭어라 부르는 것을 또 다른 지역에서는 가숭어라 부른다. 엄연히 숭어란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숭어로 둔갑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더 맛있어서 참숭어가 아니듯 덜 맛있어서 가숭어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쪽이든 제철이면 맛이 뛰어나고 철이 지나면 맛이 없다. 논란은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과 함께 이름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가숭어에 참숭어란 이름을 달아주면서 혼란이 생긴 때문이다. 가숭어가 참숭어로 불리면서 멀쩡히 숭어라 불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가숭어로 뒤바뀌어 버리기도 했다.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생물종다양성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숭어와 가숭어의 분류법이 숭어는 머리가 납작하고 까만 눈동자 주변 눈자위가 희고 가숭어는 눈을 덮은 작은 기름 눈까풀이 노랗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신안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것을 참숭어로, 흰 것을 가숭어로 부른다. 수산과학원 분류와 정반대다. 경남 통영에서도 눈자위가 노란 것을 밀치 혹은 참숭어라 하고 눈자위 검은 것은 그냥 숭어라 한다.
신안의 흑산도에서 저술된 자산어보에도 ‘(참)숭어는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 작은 것을 속칭 등기리(登其里)라 하고 어린 것을 모치(毛峙)라고 한다. 또 가숭어는 눈이 까맣고 민첩하다’고 돼 있다. 반월도에서도 눈이 노란 참숭어는 제사상에 올라가지만 가숭어는 제사상에 못 올라간다. 정리를 한다고 해 봤지만 독자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제철 맛있을 때 먹으면 된다. 쉬운 결론. 눈자위가 노란 숭어는 겨울철이 맛있고 눈자위가 까만 숭어는 오뉴월 보리가 노래질 무렵부터 여름까지 맛있다. 그래서 보리 숭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 기준은 못 된다. 생선은 서식지에 따라 맛있는 철이 다르기도 한 까닭이다. 고흥의 백일도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참숭어가 겨울이 제철인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가숭어는 보리누름 때가 아니라 가을이 맛나다. 백일도에서는 가숭어를 넘금이라 하는데 가을 넘금이로 미역국을 끓이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반월도에서는 또 밤이면 ‘뜰빵 낚시’라는 전통 어법으로 장어를 잡는데 이 낚시에는 바늘이 없다. 그런데도 더 많은 장어를 잡을 수 있다. 낚시코에 걸린 장어를 떼어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곧은 낚시다. 일자로 된 쇠막대기 옆에 갯지렁이를 끼운 낚싯줄을 매단다. 일자로 된 쇠막대와 미끼가 한몸처럼 붙어서 바닷속으로 내려가면 장어가 달려들어 미끼와 쇠막대를 꽉 문다. 장어는 탐욕스러워 한번 문 미끼를 좀처럼 놓지 않는다. 장어의 욕심을 역이용한 어로법이다. 장어가 물었다 싶을 때 힘껏 낚아채서 배 위로 끌어올리면 장어는 그대로 어선 바닥에 떨어진다. 잡아 올릴 때 어선의 선체에 장어가 닿으면 놀라서 떨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선체에 닿지 않게 조심스레 잡아 올리는 것이 기술이다. 반월도에 이런 보물 같은 전통 어로들이 아직도 전승되고 있는 것은 갯벌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퍼플섬으로 유명해진 반월박지도는 2021년엔 유엔 산하 세계관광기구(UNWTO)에 의해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선정되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