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태도는 돌산도와 연륙이 된 섬이다. 화태도 갯가길은 돌산도 예교마을 화태대교 입구부터 시작된다. 다리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 옆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인도는 차도만큼이나 널찍하다. 꽃머리산 구간 일부를 제외하면 화태도 갯가를 따라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코스 중간 지점 어디서나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화태도는 돌산도의 서남단 끝에 위치한 섬으로 한반도의 형상을 똑 닮았다. 돌산도, 횡간도, 나발도, 두라도, 월호도, 개도, 송도 등의 섬으로 둘러싸인 화태도는 산과 바다를 모두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돌산도와 1,345m 길이의 사장교인 화태대교와 연결돼 있다. 다리 아래 왼쪽은 금오도행 여객선이 드나드는 신기항이고, 오른쪽의 길쭉한 섬은 송도다. 송도 건너편이 돌산읍 소재지인 군내리다.
화태도에 다리가 건설되고 나서 화태도에 없던 것 3가지가 새로 생겼다고 말한다. 도둑, 쓰레기, 이웃 간의 분열이다. 도둑들이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와 널어놓은 곡식이나 해초를 훔쳐간다. 놀러온 낚시꾼들이나 등산객들은 도시락 싸들고 와 먹고 가면서 쓰레기 버리고 똥이나 싸놓고 가기 일쑤다.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 하는 이들은 서로 손님 유치하려고 반목이 생겼다. 다리 건설을 그토록 염원했던 섬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래서 복잡 미묘하다.
화태도(禾太島)는 면적은 2.17㎢이고, 해안선 길이는 17.0㎞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어류와 전복·김·굴 등의 양식을 많이 한다. 고려시대 말까지도 사람들이 살던 섬은 공도 정책으로 비어 있다가 1610년경 고흥에서 박경사, 순천에서 김영진, 소라에서 황동주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쳐들어오는 것을 돌산도에서 알렸다 하여 췻대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600년경에는 파태도라고 불렸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뽕나무가 자라는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015년 12월 22일에 화태대교가 개통되며 육지로 편입됐다.
화태도에는 묘두, 월전, 대동, 독정이, 마족, 건너몰, 치끝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대동마을과 건너몰을 합해서 화태마을이라 하는데 화태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학교와 은행, 보건소,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화태마을에 있다. 월전마을은 우리말로 ‘달밭구미’인데,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화태도는 돌산도와 연륙이 된 섬이다. 화태도 갯가길은 돌산도 예교마을 화태대교 입구부터 시작된다. 다리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 옆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인도는 차도만큼이나 널찍하다. 꽃머리산 구간 일부를 제외하면 화태도 갯가를 따라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코스 중간 지점 어디서나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화태도는 돌산도의 서남단 끝에 위치한 섬으로 한반도의 형상을 똑 닮았다. 돌산도, 횡간도, 나발도, 두라도, 월호도, 개도, 송도 등의 섬으로 둘러싸인 화태도는 산과 바다를 모두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돌산도와 1,345m 길이의 사장교인 화태대교와 연결돼 있다. 다리 아래 왼쪽은 금오도행 여객선이 드나드는 신기항이고, 오른쪽의 길쭉한 섬은 송도다. 송도 건너편이 돌산읍 소재지인 군내리다.
화태도에 다리가 건설되고 나서 화태도에 없던 것 3가지가 새로 생겼다고 말한다. 도둑, 쓰레기, 이웃 간의 분열이다. 도둑들이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와 널어놓은 곡식이나 해초를 훔쳐간다. 놀러온 낚시꾼들이나 등산객들은 도시락 싸들고 와 먹고 가면서 쓰레기 버리고 똥이나 싸놓고 가기 일쑤다.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 하는 이들은 서로 손님 유치하려고 반목이 생겼다. 다리 건설을 그토록 염원했던 섬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래서 복잡 미묘하다.
화태도(禾太島)는 면적은 2.17㎢이고, 해안선 길이는 17.0㎞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어류와 전복·김·굴 등의 양식을 많이 한다. 고려시대 말까지도 사람들이 살던 섬은 공도 정책으로 비어 있다가 1610년경 고흥에서 박경사, 순천에서 김영진, 소라에서 황동주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쳐들어오는 것을 돌산도에서 알렸다 하여 췻대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600년경에는 파태도라고 불렸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뽕나무가 자라는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015년 12월 22일에 화태대교가 개통되며 육지로 편입됐다.
화태도에는 묘두, 월전, 대동, 독정이, 마족, 건너몰, 치끝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대동마을과 건너몰을 합해서 화태마을이라 하는데 화태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학교와 은행, 보건소,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화태마을에 있다. 월전마을은 우리말로 ‘달밭구미’인데,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