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섬 2026년 9월

아들놈들은 꼭 돈을 넘어다 봐

애 하나오면 뜯어 묵을라고 해요, 이뻐서

오늘도 녹동 활어위판장은 활력이 넘친다. 어린 아이만큼이나 큰 농어와 도미, 장어를 비롯한 수산물들이 위판 되고 관광객들은 싸고 싱싱한 회를 양껏 사먹으며 즐거워한다. 득량도행 여객선은 녹동 쌍충사 아래 부두에서 출항한다. 고흥군 득량도는 득량만의 섬이다. 보성군과 고흥군 사이의 바다가 득량만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득량도 때문이라 한다. 하루 두 번 오고 가지만 여객은 드물다. 작은 선실에 여객은 셋. 장흥 사는 할머니 한분은 득량도에 시제를 모시러 가는 중이다. 가까운 거리지만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왔어. 서울서 오는 거 보다 더 멀어”
득량도에 살던 할머니의 가족들은 모두 보성으로 이주해 살지만 같은 씨족 사람들은 대부분 섬에 남았다. 노인들만 남은 한적한 섬, 시제를 지낼 때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씨족들이 찾아와 모처럼 떠들썩해 진다.
“노인네들 죽어 삘면 무인도 되부러. 움살이가 없어. 젊은 사람들이 살아야 새끼도 낳고 학교도 다니제. 움살이가 없어.”

젊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섬, 할머니는 자신도 섬을 떠나 살지만 노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면 섬이 무인도가 돼버릴 것이 걱정이다. 예전에 ‘고대구리배(저인망 어선)’로 고기를 잡을 때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었지만, 치어까지 잡아들이는 저인망 어업이 금지되면서 젊은이들은 모두 섬을 떠났다. 그래서 섬에는 아이들이 없다.
“애 하나 오면 뜯어 묵을라 해요. 이뻐 갖고.”
더 이상 아이가 살지 않는 섬, 어쩌다 아이 하나라도 오면 노인들은 다들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섬에는 아직도 할머니의 땅이 많다. 고생 고생해서 마련했던 땅이 이제는 묵정밭이 되었다.
“영감이랑 빼빠지게 죽고 살고 장만했제.”
일흔일곱, 할머니는 농사도 짓지 않고 놀리는 섬의 땅을 처분해서 어려운 살림에라도 보태고 싶지만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팔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땅값이 너무 싸다고 더 오르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래도 딸은 땅을 팔아 부모님 쓰라고 하는데 힘들게 대학까지 가르친 아들은 말리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도 하다.
“머이마(남자)들은 꼭 돈을 넘어다본단 말이야. 가이나(여자)들은 십원짜리 한나 달라고 안하는디.”

놀러 와줘서 고맙소

득량도 관청마을, 옛적에 득량도가 완도군 소속일 때 출장소 같은 관청이 있었던 마을이라 얻은 이름이다. 나그네는 시제 준비를 하는 할머니의 큰집까지 무작정 따라왔다. 내일 시제에 쓸 음식을 장만하느라 온 집안사람들이 다 모였다. 정씨, 김씨를 비롯한 득량도 다섯 성씨가 모두 내일 시제다. 예전에는 씨족마다 시제 모시는 날이 달랐는데 요즈음은 같은 날로 통일 됐다. 외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 다녀가기 쉽게 일요일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서울 사는 씨족들은 광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온다. 음식 준비하던 할머니들은 낯선 나그네를 반기신다.
“어디서 오셨소?”
“서울서 왔습니다.”
“놀러 와 줘서 고맙소. 뭐 구경할 거 있다고. 사람도 살도 안 해요. ”
사람이 귀한 마을에 나그네가 찾아 준 것이 반가우신 걸까. 괜한 공치사까지 하시며 선뜻 밥까지 한상 차려 내신다. 이름난 관광지나 돈을 잘 버는 섬들에 가면 가난한 나그네는 처량하다. 밥을 사먹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비싼 회나 매운탕이 아니면 일인분의 식사는 잘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 관광지들은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하고 척박한 섬일수록 사람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밥 한 그릇의 환대에 나그네는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호미 수집광 할머니

득량도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관청마을 고갯길을 넘으면 선창마을이다. 배가 드나드는 선창이 먼저 생겼던 마을이라 얻은 이름 선창마을. 16가구가 있지만 4집은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사는 고향 사람들이다. 관청마을 보다 작지만 선창마을은 숲이 좋다.
“당나무 밑이 시원해서 여름에는 점심 먹으러 오기도 싫어요.”
그래서 여름에는 마을로 피서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고향을 떠나 사는 자녀들이나 외지인들까지 찾아들어 여름동안은 “몸살이 날 정도다.” 할머니는 동부 콩이랑 팥을 까서 말리는 중이다. 아직도 군불을 때는 행랑채 부엌에는 호미가 잔뜩 걸려 있다. 세어보니 22개나 된다. 올해만 4개를 더 사셨다. 할머니는 호미 수집광. 저 호미들로 밭도 매고 갯벌에 나가 개불이나 바지락도 파신다. 오랜 세월 사용하고 닳을 대로 닳아버린 호미들까지 버리지 않고 모아오셨다. 할머니 고단한 노동의 역사가 호미로 걸려 있다.

마당에는 밀감나무 몇 그루가 아직 열매를 달고 있다. 이미 몇 상자는 따서 자식들에게 보내주셨다. 할머니가 따 주시는 밀감이 새콤하면서도 달다. 하우스 밀감보다 그 맛이 깊고 진하다. 그런데 밀감에 굵은 씨가 있다. 제주 밀감에는 좀 채로 씨가 없는데, 고흥이나 완도 지방의 밀감에는 간혹 씨앗이 들어 있다. 왜 그럴까,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오늘 할머니가 그 답을 주신다.
“유자나무 가까이 있는 귤나무는 씨가 생겨요. 수정할 때 벌들이 귤이랑 유자나무를 왔다갔다 하다가 그런 거 같아요.”
물론 추측이지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유자랑 귤은 둘 다 쥐손이풀목 운향과의 과수, 사촌들이니까. 선창마을에는 어선이 다섯 척이다. 낙지 통발이나 새우 조망을 하고 장어도 잡는다.
“여기 득량 고기가 알아줘요.”
할머니도 젊어서는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다녔다. 고대구리배를 했었다. 고대구리가 불법어업이 되면서 7년 전 뱃일은 접었다. 설 쇠고 3월까지는 개불을 파서 돈벌이를 한다. 갯벌에서는 또 꼬막이나 키조개, 피꼬막 등을 판다. 전에는 새조개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말소리 때문이었을까. 낮잠을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오신다. 일흔 다섯 할아버지가 이 마을 이장님이다. 오랜 세월 두 분이 함께 뱃일을 했었다.
“고흥만, 호산께 그런데서 멸치랑 장어랑 겁나게 잡았었는데. 고흥만 막고 나서 고기가 귀해요. 푹 들어간 홀, 거길 막아버린께.”

옛날엔 돈섬이었는디

득량만에 고기가 귀해진 것은 고흥만 간척지 때문이다. 정부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고흥군 도덕면과 두원면 사이 바닷길 2875m를 방조제로 막아버렸다. 그 때문에 갯벌 31제곱 킬로미터가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득량만을 지나 고흥만 갯벌을 찾아가 산란을 했었고 그 덕에 고흥만이나 득량만 바다에는 고기가 바글거렸다. 하지만 간척 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자 물고기들의 산란장도 없어졌다. 산란장이 사라지니 이 바다에 물고기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된 것이다.
“금바다였는디. 옛날에는 한배씩 잡았었어요. 그걸 농토로 만들어 버렸으니. 지금은 어디 농사가 시세가 있나. 물이 유통이 안 되니 바다도 죽어버리고.”

고흥만 간척으로 물고기 산란장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방조제에 막혀 해수 유통이 안돼서 득량만 갯벌도 썩어간다. 갯벌을 막아 바다를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끊어놓고도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여기뿐이랴 새만금이 그렇고 전국의 수많은 간척지가 그렇다. 보상도 간척지 주변 주민들만 조금 받았을 뿐이다.
“호산께 사람들만 쪼깐 보상 받았제. 우린 보상도 못 받고. 이런데 사람들만 죽었제. 섬, 바다를 보고 산디. 옛날에는 여가 돈섬이었는디, 돈 섬.”

이 마을에도 돌담대신 담들은 대부분 벽돌담이다. 40년 전 새마을운동 시작할 때 돌담을 헐고 쌓은 것이다. 돌담은 수 백년 세월에도 변함없이 튼튼한데 저 벽돌은 벌써 썩어서 시커멓다. 이 작은 섬의 전통을 없애버리고 시멘트로 획일화 시켜버린 새마을 운동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날림이었는지 오늘 새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