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섬 2025년 11월호

괴뢰(꼭두각시) 섬을 아는가?

강화에는 괴뢰 섬이 있었다. 괴뢰란 꼭두각시를 뜻한다. 괴뢰섬은 미법도에서 서검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다. 지금은 한전 송전탑이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삼산면지’에 따르면 괴뢰섬은 본래 귀아리 섬이었다. 한자로 옮기면서 귀하도(歸下島)가 됐고 간첩 사건이 발생한 뒤 괴뢰섬이 됐다. 지금은 괴리섬으로 부른다.

강화군의 크고 작은 섬들은 어느 곳 하나 남북대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다. 북에서 넘어오던 잠수함이 몇 번이나 발각된 곳도 nll 인근의 서검도 앞바다다. 미법도 북쪽의 기장섬도 본래는 7가구가 사는 유인도였다. 자생하는 기장이 많아 기장섬(黍島)이라 했었다. 어족이 풍부해 한때는 풍요를 구가하던 섬. 기장섬 앞바다 새우잡이 배의 불빛은 서도어등(黍島漁燈)이라 불리며 교동팔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이 섬도 무장간첩 사건 뒤 소개되어 무인도가 됐다.

미법도와 서검도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강화 본섬에서 바로 이어진 직항로는 없다. 석모도 하리 포구에서 여객선이 다닌다. 석모도 하리 선착장에서 출항한 여객선은 10분 만에 미법도에 도착한다. 석모도와 지척이지만 교통이 불편한 미법도는 낙도다. 옛날 미법도는 서검도와 함께 외국으로부터 온 배들을 검문하던 곳이다.

섬에는 후손 없는 묘지가 많다. 외래 선박들이 항해 중 사망한 이들을 섬에 매장하고 떠난 까닭이다. 인근의 섬들처럼 섬은 본래 어업이 주업이었으나 군사분계선이 그어지면서 어로에 제약이 많아져 어업은 쇠퇴하고 농업이 주업이 됐다.

1965년 10월29일, 갯벌에서 조개잡이 하던 어민 100여 명이 북한 경비선에 의해 집단 납북 됐다가 11월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사건이 있었다. 모두가 미법도 주민들. 어민들은 경찰 조사 뒤 풀려났다.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76년부터 미법도에서 연달아 다섯 차례의 고정간첩 사건이 터졌다. 납북됐다가 돌아온 어민들이 줄줄이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갔다. 섬은 공안의 칼바람에 초토화 됐다. 그중 한 어민은 ‘인천 제철 폭파 공작’의 혐의가 씌워졌다. 그 어부는 마을의 민방위 소대장이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그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1982년, 남산의 대공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온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맞았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부인까지 잡아다 고문했다. 납북 당시 평양에서 친척에게 포섭돼 강화도 인근 경찰서의 위치와 교통편 등 국가기밀을 탐지하는 간첩 활동을 한 것으로 조작됐다. 어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을 복역했다. 2007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납북어부 간첩’ 정영씨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월이 흘렀지만 남파 간첩 사건이나 납북어부 간첩 사건 등은 섬 주민 대다수에게 여전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았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데 피해자들이 오히려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비극, 대체 이 비극의 세월은 언제쯤이나 끝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