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과 가장 낮은 섬 가파도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의미 깊다. 낮은 섬 가파도는 느리게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가파도는 머물렀을 때 작은 섬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 20.5m. 언뜻 보면 섬은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지만 사람살이 내력은 신석기시대까지 이어진다. 제주도내에 남아 있는 180여 기의 고인돌 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가파도의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판석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묘실을 만든 다음 작은 굄돌을 놓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왕돌의 나라. 이 손바닥만큼 작은 섬도 그 옛날부터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살았던가.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항에서 서남쪽으로 5.5Km 거리에 있다.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 지점. 마라도보다 두 배 반 정도 크지만 제주 본 섬과의 소통은 쉽지 않다. 국토 최남단의 월계관을 쓰고 유명 관광지가 된 마라도는 송악산과 모슬포 두 곳에서 쾌속선이 수시로 뜨는데 불과 5킬로 차이로 최남단이 되지 못한 가파도에는 정기 여객선이 하루 두 차례 겨우 다닌다. 제주에서 더 먼 마라도는 더 이상 낙도가 아니지만 가파도는 여전히 낙도다.
가파 포구 입구부터 섬은 성게 향으로 아득하다. 해녀들은 잠수복도 벗지 않은 채 선창가 건물 그늘에 앉아 성게 작업 중이다. 해녀들은 집 마당에서도 성게 알을 깐다. 여객선이 닿는 하동 마을 인근에 대부분의 집들이 몰려 있다. 하동 마을을 지나 상동으로 가는 길 주변은 들판이다. 대부분의 밭에 고구마와 콩과 보리를 심었다. 놀리는 밭이 없는 것은 고맙지만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마운 것은 섬사람들이 아직 땅의 생산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 힘든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동 마을 초입의 낡은 집 한 채. 이 집에서도 할머니 해녀가 성게 작업 중이다. 할머니는 손칼로 성게를 쪼갠 뒤 작은 숟가락으로 성게 알을 긁어낸다. 고단하고 지루한 작업.
“물도 나무도 귀한 섬에서
점심도 못 먹고 물질을 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이
서방님 용돈에 다 들어간다.
어떤 년은 팔자가 좋아
분단장 하고 살아가는데
이 내 팔자 허망하여
물질하면서 살아간다.”
– 제주 민요 < 잠수 노래>
오랜 세월 무인도였던 가파도에 다시 사람살이가 시작된 것은 조선 영조 때 제주 목사가 조정에 진상할 목적으로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부터다. 과거에 섬은 왜구나 해적들의 침탈, 해상 방위 등의 목적으로 자주 공도(空島) 정책이 실시 됐다. 터전을 잡을 만하면 섬사람들은 섬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외딴 섬이거나 작은 섬들일수록 섬의 역사는 자주 단절의 역사다.
섬사람들은 섬에서 강제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섬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도록 강제되기도 했다. 천민들이 이주의 자유가 없었던 것처럼 섬 주민들 역시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살기도 했다. 육지에서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비하하는 태도가 근래까지 이어져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1629년부터 1830년까지 출륙 금지령이 내려졌다. 섬사람들은 공납의 괴로움과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출륙 금지령은 제주 섬사람들 전체를 유배 죄인으로 만들었다.
가파도에는 하동과 상동 두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섬의 번화가는 하동이다. 두 개의 구멍가게와 복지 회관, 가파 초등학교, 보건 진료소, 경찰 초소, 해수 담수화 시설, 발전소, 식당 하나가 하동 가파 포구 부근에 있다. 불락코지, 뒤시여, 멸통안, 까마귀돌 등도 하동 주변에 있다. 마을의 공동묘지는 상동에서 하동으로 돌아가는 북쪽 해안가 있다. 거기 시제 모시는 제각도 함께 있다. 상동 포구 주변에는 작은이끈여, 평풍덕과 이개덕, 개엄주리코지, 큰옹짓물 등이 있다. 등대는 하동 남부르코지에 있다.
상동포구 선착장 부근에 패총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인돌과 함께 가파도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유적이다. 시간은 사람이 먹고 남긴 쓸모없는 조개껍질들, 쓰레기마저 귀중한 유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시간은 삶을 지배하는 유일신이고 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신이다. 아무리 하찮다고 여겨지는 삶도 시간의 주재 하에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사소한 것 하나도 돌이켜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가파도 북쪽 해안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다. 삶의 이면 도로는 묘지들로 가득하다. 묘지의 주인들은 끝내 평생 자맥질하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 곁에 누웠다.
“너른 바당 앞을 재언 혼질 두질 들어 가난 저승길이 왓닥 갓닥 이어싸나 이여싸나.”
– 제주 민요 <이어도>
이어도, 그들은 마침내 저승길을 지나 유토피아에 도착한 것일까. 해변의 묘지 끝자락쯤에 가파도의 할망당이 있다. 할망당에는 더 이상 소망을 비는 기도의 자취가 없다. 당 할망의 조력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섬사람들의 삶은 안전해진 것일까. 해안선 길이 4.2km. 타원형의 섬을 한 바퀴 돌아오니 다시 하동 선착장이다. 해녀들은 여전히 성게 알을 까고 있다. 성게 알은 1킬로그램에 5만원. 젊은 해녀라도 하루 1킬로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에 비해 대가는 터무니없이 적다. 도시 소비자들에게 성게 알은 쉽게 맛 볼 수 없는 값비싼 음식이다. 여기서도 해녀 노동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중간 상인들이다. 성게 알은 어촌계로 모아져 내일 아침이면 상인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가파도 또한 제주 여느 섬처럼 물이 넉넉하지 못하다. 가파도의 식수는 지하수와 해수담수화 시설을 통해 공급된다. 2004년 10월-2005년 12월 사이에 총 예산 10억 원이 투입되어 해수담수화 시설이 만들어졌다. 담수화 시설은 하루 150톤의 생산 능력이 있다. 섬에서 오랜 세월 쏟아지던 용천수와 우물이 마르게 된 것은 인구의 증가 때문이 아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었으나 물은 점점 부족해졌다. 섬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육지를 닮아가면서 물 낭비적인 삶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비바람일까. 마라도 쪽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돌이켜 보면 나그네는 늘 바람과 맞서기만 했다. 바람을 타는 것과 바람에 맞서는 것 어느 쪽이 진리일까. 가파도 하동포구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선 집들의 돌담은 튼튼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돌담은 구멍까지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 숭숭 뚫린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돌담은 저 구멍으로 바람을 분산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온 것이다.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어 바람이 지나갈 샛길 길을 만들어 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