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추자군도의 횡간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최북단 유인도다. 보길도와 소안도가 지척이다. 그 너머는 해남 땅끝마을이다. 하지만 땅끝은 땅의 끝이 아니다. 대지를 가로질러와 해남 땅끝 마을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산줄기는 바다 속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는 흑일도, 백일도, 넙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를 지나 횡간도, 추자도까지 뻗어 있다. 섬도 육지다. 한반도와 한 몸으로 연결된 진정한 땅의 끝은 추자군도의 섬들이다.
상추자도 대서리. 추자도는 영광 법성포와 연평도 어장에서 사라진 조기잡이의 새로운 메카다. 추자항 주변 물량장에서는 조기 따는 작업이 한창이다. 연안유자망 어선 해창호(7.03톤)도 부두에 정박, 작업 중이다. 오늘 해창호는 추자와 제주 사이의 바다에서 조업했다. 해창호는 조기가 걸린 그물을 그대로 싣고 입항했다. 품팔이를 나온 마을 여자들과 선원들 12명이 일렬로 서서 배에 실린 그물을 뭍으로 끌어당기며 조기를 딴다. 조기들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추자도 역시 올해 조기는 잘다. 그물에서 따낸 조기는 깨끗이 세척한 뒤 얼음물에 한 시간 남짓 재워둔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후에는 다시 꺼내 나무 상자에 넣고 얼음을 채운다. 하루 정도 지나면 조기의 몸이 더욱 노란 빛깔로 변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해창호 선주 부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낚싯줄 재료인 경심 줄로 만든 그물은 그 자체로 바늘 없는 낚시다. 조기들은 낚시가 아니라 그물에 낚인다. 그물코에 머리가 걸린 조기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발버둥 치다 생을 마감한다. 조기 따는 작업장 옆에서 선주 부인이 저녁상을 차린다. 삼치와 조기찜, 김치찌개, 방어전, 고등어회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다. 선주 부인이 나그네에게도 저녁을 권한다. 허기진 나그네는 염치없이 합석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어부를 위해 선주 부인은 해물된장찌개를 따로 끓였다.
조기를 따는 작업장의 불빛으로 추자도의 가을밤은 환하다. 추자 어화가 부둣가에 피었다. 기관 돌아가는 소리, 수천 촉 백열등 아래 어부들은 그물을 당겨 조기를 딴다. 밤 10시, 이제 추자도의 조기 따는 일도 끝이 났다. 일꾼들은 돌아가고 선주와 선원들이 남아 그물을 세척하고 다시 배안으로 끌어 올린다. 내일의 출어 준비를 마친 다음에야 선원들의 고단한 하루도 마감될 것이다. 이 조기잡이 풍경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연평도와 칠산어장에서 조기가 멸족한 길을 흑산도와 추자도가 그대로 밟아갈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에 눈 감는 선주들의 욕심이 줄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세상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히 풍족한 곳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언제나 모자란 곳이다.
둥근 지구를 확인할 수 있는 추자도 등대
한국의 섬들에는 저마다의 신들이 있었다. 연평도의 신은 임경업 장군이고 어청도와 외연도의 신은 중국 제나라의 망명객 전횡 장군이다. 변산 바다의 신은 계양할미고 진도의 신은 영등할미, 통영바다의 신은 마구할미다. 완도의 신은 송징과 장보고 장군이고 청산도의 신은 한내구 장군이다. 제주 본섬에는 1만8천의 신들이 있지만 추자도의 신은 사량도처럼 최영 장군이다. 추자도는 상하 추자 두 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 하추자에 최영 장군 신을 모신 사당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에 의해 제주목사도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군사용 말을 기르던 몽골 출신 목자들이 중심이 된 목호의 난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영 장군에게 전함 300여 척과 2만5000여 명의 군사를 주어 목호들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최영의 군사들이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잠시 추자도에 대피했다. 그때 최영이 주민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추자도 사람들은 사당을 세우고 매년 백중날과 음력 섣달그믐에 풍어제를 지내왔다 한다. 최영이 정말 어로법을 가르쳤을 리는 없다. 하지만 추자도 사람들에게 대군을 이끌고 온 노장군 최영은 두렵고도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를 신으로 모신다면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주고 풍어를 가져다 줄 수 있으리 믿을 만하지 않았겠는가. 최영장군이 추자도의 신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다.
추자면 소재지 부근 영흥리와 대서리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거대한 성의 일부분 같다. 옆집과 떨어져 있으면 태풍이나 파도에 휩쓸려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양 옆으로 혹은 앞뒤로 밀착되어 있다. 오래된 습속.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람은, 섬은 군집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섬에서는 모여 살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 바다일은 협업이었다. 또 왜구나 해적들의 노략질과 살육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모여 살아야만 했다. 삶을 이어가고 죽음에 맞서기 위해서는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추자도의 주거 양식은 확실히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구조다.
상추자 북서쪽의 무인도 직구도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그 풍경을 달리한다. 안개의 날에는 섬의 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사물은 객관적이지만 풍경은 주관적이다. 풍경은 속도에 종속된다. 걷는 속도, 탈 것의 속도, 바람과 안개와 구름의 속도, 마음의 속도에 지배된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 와서도 그려내는 풍경이 사람마다 제 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가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낸다.
낚시꾼들의 천국인 추자도에 여행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제주올레 코스가 생기고 난 뒤부터다. 추자도 올레길은 산과 바다와 내륙이 어우러진 절경의 연속이다. 망망대해의 작은 섬 추자도의 풍광은 제주도와는 또 다른 다도해의 수려함이 있다. 상추자 봉래산이나 하추자 신대산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전망도 좋지만 상추자 등대 전망대에서 보는 남해바다 풍경은 압도적이다. 사방팔방으로 트인 바다 풍경을 360도 회전 하며 바라보면 둥근 지구의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우주 공간이 아니고서야 둥근 지구의 모습을 선채로 확인 할 수 있는 한국의 땅이 추자도 말고 또 있을까. 하추자 올레길의 예초리 기정길 또한 놓치면 후회할 최고의 풍경이다. 추자도 뱃길은 대게 거칠지만 봄, 가을에는 비교적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다. 특히 5월과 10월의 추자 바다는 더 없이 잔잔하다. 그래도 워낙 먼 바다의 섬이니 언제든 갑작스레 배가 묶일 수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추자도는 하루나 이틀 쯤 발이 묶이고 싶을 때 떠나면 더욱 좋은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