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올림픽 사격 세계 2등이 된 섬 소녀의 고향 - 신안 당사도

신안에는 중국의 당나라 때 양자강 모래가 흘러와서 만들어진 섬이 있다! 그래서 한자 이름도 당나라 당(唐)과 모래 사(沙)를 써서 당사도(唐沙島)다. 제주의 비양도(飛揚島)는 천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섬이 중국 쪽 하늘에서 날아와서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날 비(飛) 자를 써서 비양도다. 거제의 외도는 일본 쪽 바다로부터서 떠내려온 섬이라 전해진다. 섬의 탄생 신화다. 이러한 이야기들에는 국토부동관(國土浮動觀)이 깃들어 있다. 국토부동관이란 자연현상을 인문지리적으로 보고 풀어내는 사상이다.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 지각의 상승 하강 운동인 조륙운동이나 산맥을 형성하는 지각 변동인 조산운동 등의 자연현상을 신화적으로 해석했던 사상이다. 당나라에서 모래가 떠내려와 생긴 섬이란 당사도의 유래처럼.

물론 작은 섬에 당(堂)이 두개나 있고 마을 뒤에는 모래(沙)가 많아 당사(唐沙)도라 했다는 지명 유래도 있다. 대부분의 작은 섬마을에도 상당, 하당 당이 둘씩은 있었고 더 규모가 큰 마을에는 중당까지 3개씩 있는 마을도 많았으니 이유래가 맞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당이 두 개나 있어서 당사도라 했다는 이야기 또한 신화적이다. 섬에서 당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을 신전인 당의 주신은 300살 자신 거목 팽나무들 어른신들이다. 윗당의 할아버지 팽나무와 아랫당의 할머니 팽나무다.

웃당 숲은 북서풍을 아랫당 숲은 남동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조성됐었다. 본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심었던 나무들이 자라나 거목이 되자 마침내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격화 된 것이다. 오랜 세월 모진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의 농작물을 지켜주고 사람이 사는 집들까지 보호해 주었으니 어찌 영험한 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웃당이든 아랫당이든 당산 숲에서는 부정한 일을 하면 동티가 난다고 했다. 팽나무 가지 하나라도 꺾으면 손가락이 오그라든다는 말이 전승될 정도로 신성시됐고 당제를 엄하게 모셨다. 당산나무 근처에 오줌을 누면 꼬치(성기)가 부르튼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나무에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경책을 삼았던 것이다.

당제를 모실 때면 마을에서 깨끗한(부정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을 선출하여 매년 정월 보름날 마을의 수호신인 팽나무 앞에서 당제를 모시도록 했다. 선출된 제관들은 고개 넘어 계곡에서 목욕하고 물을 길어다 밥을 지어 제사를 올렸다. 당제 때는 돌무더기로 만든 제단에 음식을 해서 바친 뒤 구들장 같은 널돌로 덮어서 눌러두곤 했다. 아마도 다른 짐승들이 음식에 입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제가 모셔지는 날은 농악패가 가가호호 방문하고 농악도 울렸다,

하지만 당제가 끝나고 나면 팽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어른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며 놀았다. 윗당의 팽나무 그늘은 젊은이들에게 만남의 장소였다. 섬이라 청춘 남녀가 갈 곳이 따로 없으니 나무 아래서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연애 나무였고 연애 숲이었다. 당제가 중단된 것이 벌써 50여년 전이다.

윗당인 할아버지 당은 보호수를 비롯해 팽나무 12그루와 다른 고목나무 8그루 등 20여 그루의 고목이 있는 당숲이다. 할아버지당 아래 작지 해변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당사도에도 농토가 많지만 이제는 대부분 묵히고 양파 농사를 조금 한다. 농사가 돈이 되지 않으니 다들 김 양식이 주업이다. 50여 가구가 김 양식을 한다. 여름에는 민어잡이도 해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12척의 어선이 7월부터 민어를 잡는다.

윗당의 팽나무를 찾아가는 길, 내력을 듣기 위해 길갓집에 들렀다. 주인 어르신이 반기며 대뜸 나그네의 끼니 걱정부터 하신다. “밥은 자셨소? 밥 먹고 가시오.” 나그네가 섬에 가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바로 “밥 먹고 가시오”다. 그래서 나그네는 식당이 없는 섬엘 가도 밥을 굶을 일이 없다. 특히 작은 섬들, 덜 알려진 섬들일수록 인심이 후하다. 모르는 나그네를 재워주고 먹여주던 우리네 전통문화.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런 작고 외로운 신안의 섬들이다. 당사도 또한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있다.

아침도 걸렀는데 당사도에는 식당도 민박도 없다. 당연히 밥을 먹을 곳이 없다. 마침 양파 수확 철이라 품앗이 하는 이웃들의 밥상을 차리고 계셨다. 덕분에 나그네도 숫가락을 얹게 된 것이다. 마른 숭어찜에 머위 장아찌, 풀치젓, 송어(밴댕이)회무침, 오이냉국, 갓물김치에 텃밭에서 막 뜯어온 상추와 밭에서 막 캐온 양파 등으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이런 귀한 밥상을 또 이리 받다니! 섬 인심이 거룩하다. 마른 숭어찜은 마른 생선찜 중에 으뜸이다. 마른 민어나 농어보다 윗길이다. 말리기도 참 까다로운 생선이 숭어다. 간이 조금 강하게 말리면 ‘쩌러서’ 못 먹는다. 간이 조금만 약하면 말리는 과정에서 곯아버린다. 간을 제대로 하고 말려야 제맛을 낸다. 흔해서 우습게 보지만 숭어의 한자 말은 숭어(崇漁), 옛 이름도 수어(秀漁)다. 높은 물고기, 빼어난 물고기란 뜻이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생선인가.

머위는 또 얼마나 좋은 약용 음식인가. 그 머윗대를 아삭하게 삶아 장아찌를 담아냈다. 게다가 한참 제철이라 물이 오를대로 오른 송어회 무침까지 곁들여 졌다. 송어는 밴댕이의 신안, 목포 지역 말이다. 참으로 기막힌 밥상 아닌가?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는 밥상. 이런 귀한 밥상을 길 가는 나그네가 받았다. 팽나무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서며 안주인께 인사를 드렸다.
“아침도 굶고 점심까지 굶는가 했는데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씀이 참으로 거룩하다.
“어치코 굶겠소. 사람 산데서.“

말씀이 가슴을 친다. 사람 사는 곳에서 어찌 사람을 굶길 수 있겠느냐!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 그 말씀 새기며 팽나무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당사도 팽나무들은 올리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키워준 나무들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당 바로 아랫집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보나 선수의 어머니를 만났다. 당사도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사격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딴 이보나 선수의 고향이다. 이보나 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많이 땃다. 할아버지 당 아래 작지 해변에 어머니 최유진 씨가 산다. 작은 섬마을 소녀가 사격으로 세계 2등을 했다.

금메달이 최고라지만 은메달이라고 가치가 적을까? 세계 2등이 아닌가. 하지만 당사도에 이보나 선수의 공적을 알려주는 표식은 하나도 없다. 이보나 선수 어머니는 어린 이보나도 팽나무 당산나무 아래에서 뛰어놀며 자랐다고 이야기한다. 팽나무는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워주고 응원해준 할아버지, 할머니다. 당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이보나 선수는 결국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이루었다. 가난한 집안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납부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운동선수가 됐다는 효녀 이보나 선수. 그의 꿈을 키워준 팽나무 아래 작은 기념비라도 세워지면 좋겠다.

당사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처음으로 피신을 해왔던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섬의 뒤 안 방죽구미 계곡에는 이순신 장군이 물을 마셨다는 샘이 남아있다. 1597년 9월 16일(양력10월 26일)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당사도롤 진을 옮긴 이야기가 나온다.
“이른 아침 망군이 들어와 알리기를 적선이 무려 200여척이나 명량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향해 오고 있다고 했다…(중략) 배위의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는데 낯빛을 잃었다. 나는 ‘적이 비록 1000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를 바로 잡지는 못할 테니 절대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라’라고 말했다…(중략)

천행(天幸)이었다. 천행이었다. 우리를 포위했던 적선 30척도 물리치니 적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다시는 들어와 범하지 못했다. 이곳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물이 빠져 배 대기가 적당하지 않았다. 건너편 포구로 진을 옮겼다가 달빛을 타고 당사도로 옮겨서 밤을 지냈다.“

이순신 함대를 숨겨주고 보호해 주었던 섬. 당사도 당산나무 보호수 아래 또 이순신 장군의 여정을 기록한 기념비라도 하나 세워져 당사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