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둘레길

백섬백길

86

10km

서해의 화산섬.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해안 지형의 백미”라 상찬한 섬

굴업도 둘레길

백섬백길

86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코스 소개

8천만~9천만 년 전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작은 제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 곳곳에 화산활동과 침식의 역사가 바위에 깊게 새겨져 있고, 섬 전체가 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낸 조각품과 같다. 굴업도 둘레길은 이토록 아름다운 섬 구석구석을 따라 걷는 환상의 섬길이다. 하나 남은 큰마을과 개머리초지,연평도산,덕물도산,모래해변을 거치는 둘레길이다.

코스세부정보

굴업도항( 0 km) 덕물산( 1.8 km) 연평산( 1.3 km) 코끼리 바위( 0.5 km) 큰마을( 1.7 km) 개머리초지( 1.8 km) 큰마을( 1.8 km) 굴업도항( 1.3 km)

교통

1

출발지

도착지

2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掘業島). 8천만~9천만 년 전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원형의 섬’ 굴업도는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해안 곳곳에는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마치 제주도를 방불케 한다. 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낸 조각품 같은 섬이지만,  한때 핵폐기장 유치로 몸살을 앓았던 섬이기도 하다. 굴업도에는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 남아 있는 멸종 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인 매와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 굴업도는 또 민어 파시로 유명했던 어업전진 기지이기도 했다.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 말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응회암 섬이다. 화산 폭발 후 그 재가 날아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그래서 해변에는 화산활동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도 선명히 기록되어 있다. 굴업도 해안은 그 자체로 생생한 지리 교과서다.

해안선 길이 12km에 불과한 굴업도는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지형이다. 물이 잘 빠지는 세사토(細沙土)라 한때 땅콩 재배를 많이 했었다. 굴업도는 큰 섬과 작은 섬 두 개가 장수리라는 모래밭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제시대에는 이 장수리에 파시촌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한때 굴업도 바다는 인천의 대표적인 민어 어장이었다. 그래서 굴업도는 어업 전진기지였다. 파시 때면 수천척의 어선과 어부들, 상인들 수만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큰 섬에는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이, 작은 섬에는 목금이 마을이 있었지만 30여 년 전쯤 목금이 마을과 작은 마을은 폐촌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큰 마을 하나만 남았다. 목금이 마을이 있던 작은 섬에는 덕물산(126m)과 연평도산(123m)이 있는데 이들 이름은 산이 각각 덕적도와 연평도를 바라보고 서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지금은 두 섬을 연결하는 장수리 모래톱이 낮아져 만조 때면 한두 시간씩 물에 잠기곤 한다.
한때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 키워 토끼섬이라 이름 붙은 토끼섬은 20m 높이의 절벽에 3~5m 깊이로 우묵한 ‘터널’들이 파져 있다. 터널을 판 것은 굴삭기가 아니다. 염분이다. 이 터널들을 ‘해식와’라 한다. 한국 최대의 해식와다. 해식와는 노치(notch)라고도 하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닷물에 섞인 염분이 바위를 녹임으로써 깊고 좁게 침식된 지형을 말한다.

썰물 때면 연결이 되는 굴업도 큰 마을 바로 앞의 무인도 토끼 섬은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토끼섬에는 또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멸종 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인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323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매도 매년 5~6월 번식기면 15마리 정도가 관찰되기도 한다. 

덕적도 인근 바다는 평균 10~15m에 불과하다. 그런데 굴업도 동쪽 바다로 가면 수심이 80~90m로 급격하게 깊어진다. 이 바다에 거대한 해저 골짜기가 있다. 굴업도 바다에 골짜기가 생긴 것은 이 바다 밑으로 거대한 활성 단층들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지진 위험지대라는 뜻이다. 1994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정부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바다 속의 골짜기는 주변보다 찬 물이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찬 바닷물이 여름철의 더운 공기와 만나 안개를 발생시킨다. 여름이면 이 바다에 짙은 안개가 자주 끼어 뱃길이 끊기곤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이 안개의 염분이 바위에 스며들어 터널을 파낸 것이 해식와다. 바위를 녹일 정도로 염분의 힘은 강하다.

토끼섬 뿐만 아니라 굴업도 해안은 곳곳이 절경이다. 목기미 해변에는 코끼리바위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동쪽 해안은 염분에 바위가 부식돼 빵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고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해안은 마치 거대한 조각 공원 같다.

이 목기미 해변은 과거에 굴업도 파시가 섰던 해안이다. 굴업도 바다는 연평도, 백령도, 팔미도, 남양만, 대청도, 초치도, 만도리 바다와 함께 인천의 대표적인 어장이다. 그래서 덕적군도 최초의 어업 근거지가 굴업도였다. 1920년 전후 민어어장이 발견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어선들이 몰려들었고 굴업도에도 파시가 섰다. 외지 상인들이 들어와 선구점과 술집을 열었다. 여름철 민어 파시 때면 사건 사고 처리를 위해 인천에서 순사가 파견되기도 했다. 당시 파시에는 조선인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상인까지 참가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1923년 파시에는 인천뿐만 아니라 충청도 서산, 보령, 전라도, 제주 등지에서 온 선박 3백여 척과 선원, 상인 등 2천여 명이 몰려들었다. 음식점, 색주가, 선구점 등만 130여 호에 500여 명이 종사했다. 이때는 인천과 굴업도 간을 임시 왕래하는 발동선도 출항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동아일보는 굴업도에 일어난 참극을 전하고 있다. 번성하던 파시가 갑자기 밀어닥친 해일로 초토화된 것이다.

“어기 중 굴업도 전면 선박 파괴 200여 척” 『동아일보』 1923년 8월 16일자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는 해일과 폭풍으로 130호의 가옥이 파괴되고 굴업도 항에 대피했던 100척과 항 밖에 있던 100척 등 모두 200여 척의 민어잡이 어선이 조난당했다고 보도한다. 바다는 잠잠했고 해일의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8월 12일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전조라면 전조였을까. 하루 밤낮을 꼬박 비가 쏟아지더니 8월 13일 아침, 바다는 갑자기 폭풍에 휩싸였다. 100여 척의 어선들은 거센 바람과 파도를 피해 굴업도 내항으로 피항했고 나머지 어선들은 항 밖에 닻을 내리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거센 바람은 그치지 않았고 곧이어 무서운 해일이 밀어닥쳤다. 해일은 순식간에 어선들을 뒤집고 휩쓸어 버렸다. 아비귀환. 내항, 외항 할 것 없이 굴업도는 아수라 지옥으로 변했다. 당시 민어잡이 어선 한 척에는 보통 5~6명씩 승선했으니 해일은 200여 척의 배에 승선한 1,200여 선원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파시촌을 형성했던 조선 가옥 120호와 일본사람 상점 6호, 중국사람 상점 2호도 “바람에 날려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섬이 이제는 CJ라는 거대기업의 리조트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있기도 했다. CJ그룹이 출자한 회사가 이미 섬의 98%를 사들여 섬을 사유화하다 싶이 했다. 거대 기업이 탐하는 이유는 그만큼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아름답다는 반증이다. CJ가 굴업도 섬 전체의 상층부를 잘라내고 골프장까지 만들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골프장건설이 취소 됐다.

굴업도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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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화산섬.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해안 지형의 백미”라 상찬한 섬

코스 소개

8천만~9천만 년 전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작은 제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 곳곳에 화산활동과 침식의 역사가 바위에 깊게 새겨져 있고, 섬 전체가 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낸 조각품과 같다. 굴업도 둘레길은 이토록 아름다운 섬 구석구석을 따라 걷는 환상의 섬길이다. 하나 남은 큰마을과 개머리초지,연평도산,덕물도산,모래해변을 거치는 둘레길이다.

코스세부정보

굴업도항( 0 km) 덕물산( 1.8 km) 연평산( 1.3 km) 코끼리 바위( 0.5 km) 큰마을( 1.7 km) 개머리초지( 1.8 km) 큰마을( 1.8 km) 굴업도항( 1.3 km)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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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掘業島). 8천만~9천만 년 전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원형의 섬’ 굴업도는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해안 곳곳에는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마치 제주도를 방불케 한다. 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낸 조각품 같은 섬이지만,  한때 핵폐기장 유치로 몸살을 앓았던 섬이기도 하다. 굴업도에는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 남아 있는 멸종 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인 매와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 굴업도는 또 민어 파시로 유명했던 어업전진 기지이기도 했다.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 말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응회암 섬이다. 화산 폭발 후 그 재가 날아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그래서 해변에는 화산활동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도 선명히 기록되어 있다. 굴업도 해안은 그 자체로 생생한 지리 교과서다.

해안선 길이 12km에 불과한 굴업도는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지형이다. 물이 잘 빠지는 세사토(細沙土)라 한때 땅콩 재배를 많이 했었다. 굴업도는 큰 섬과 작은 섬 두 개가 장수리라는 모래밭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제시대에는 이 장수리에 파시촌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한때 굴업도 바다는 인천의 대표적인 민어 어장이었다. 그래서 굴업도는 어업 전진기지였다. 파시 때면 수천척의 어선과 어부들, 상인들 수만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큰 섬에는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이, 작은 섬에는 목금이 마을이 있었지만 30여 년 전쯤 목금이 마을과 작은 마을은 폐촌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큰 마을 하나만 남았다. 목금이 마을이 있던 작은 섬에는 덕물산(126m)과 연평도산(123m)이 있는데 이들 이름은 산이 각각 덕적도와 연평도를 바라보고 서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지금은 두 섬을 연결하는 장수리 모래톱이 낮아져 만조 때면 한두 시간씩 물에 잠기곤 한다.
한때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 키워 토끼섬이라 이름 붙은 토끼섬은 20m 높이의 절벽에 3~5m 깊이로 우묵한 ‘터널’들이 파져 있다. 터널을 판 것은 굴삭기가 아니다. 염분이다. 이 터널들을 ‘해식와’라 한다. 한국 최대의 해식와다. 해식와는 노치(notch)라고도 하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닷물에 섞인 염분이 바위를 녹임으로써 깊고 좁게 침식된 지형을 말한다.

썰물 때면 연결이 되는 굴업도 큰 마을 바로 앞의 무인도 토끼 섬은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토끼섬에는 또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멸종 위기종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인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323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매도 매년 5~6월 번식기면 15마리 정도가 관찰되기도 한다. 

덕적도 인근 바다는 평균 10~15m에 불과하다. 그런데 굴업도 동쪽 바다로 가면 수심이 80~90m로 급격하게 깊어진다. 이 바다에 거대한 해저 골짜기가 있다. 굴업도 바다에 골짜기가 생긴 것은 이 바다 밑으로 거대한 활성 단층들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지진 위험지대라는 뜻이다. 1994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정부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바다 속의 골짜기는 주변보다 찬 물이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찬 바닷물이 여름철의 더운 공기와 만나 안개를 발생시킨다. 여름이면 이 바다에 짙은 안개가 자주 끼어 뱃길이 끊기곤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이 안개의 염분이 바위에 스며들어 터널을 파낸 것이 해식와다. 바위를 녹일 정도로 염분의 힘은 강하다.

토끼섬 뿐만 아니라 굴업도 해안은 곳곳이 절경이다. 목기미 해변에는 코끼리바위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동쪽 해안은 염분에 바위가 부식돼 빵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고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해안은 마치 거대한 조각 공원 같다.

이 목기미 해변은 과거에 굴업도 파시가 섰던 해안이다. 굴업도 바다는 연평도, 백령도, 팔미도, 남양만, 대청도, 초치도, 만도리 바다와 함께 인천의 대표적인 어장이다. 그래서 덕적군도 최초의 어업 근거지가 굴업도였다. 1920년 전후 민어어장이 발견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어선들이 몰려들었고 굴업도에도 파시가 섰다. 외지 상인들이 들어와 선구점과 술집을 열었다. 여름철 민어 파시 때면 사건 사고 처리를 위해 인천에서 순사가 파견되기도 했다. 당시 파시에는 조선인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상인까지 참가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1923년 파시에는 인천뿐만 아니라 충청도 서산, 보령, 전라도, 제주 등지에서 온 선박 3백여 척과 선원, 상인 등 2천여 명이 몰려들었다. 음식점, 색주가, 선구점 등만 130여 호에 500여 명이 종사했다. 이때는 인천과 굴업도 간을 임시 왕래하는 발동선도 출항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동아일보는 굴업도에 일어난 참극을 전하고 있다. 번성하던 파시가 갑자기 밀어닥친 해일로 초토화된 것이다.

“어기 중 굴업도 전면 선박 파괴 200여 척” 『동아일보』 1923년 8월 16일자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는 해일과 폭풍으로 130호의 가옥이 파괴되고 굴업도 항에 대피했던 100척과 항 밖에 있던 100척 등 모두 200여 척의 민어잡이 어선이 조난당했다고 보도한다. 바다는 잠잠했고 해일의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8월 12일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전조라면 전조였을까. 하루 밤낮을 꼬박 비가 쏟아지더니 8월 13일 아침, 바다는 갑자기 폭풍에 휩싸였다. 100여 척의 어선들은 거센 바람과 파도를 피해 굴업도 내항으로 피항했고 나머지 어선들은 항 밖에 닻을 내리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거센 바람은 그치지 않았고 곧이어 무서운 해일이 밀어닥쳤다. 해일은 순식간에 어선들을 뒤집고 휩쓸어 버렸다. 아비귀환. 내항, 외항 할 것 없이 굴업도는 아수라 지옥으로 변했다. 당시 민어잡이 어선 한 척에는 보통 5~6명씩 승선했으니 해일은 200여 척의 배에 승선한 1,200여 선원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파시촌을 형성했던 조선 가옥 120호와 일본사람 상점 6호, 중국사람 상점 2호도 “바람에 날려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섬이 이제는 CJ라는 거대기업의 리조트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있기도 했다. CJ그룹이 출자한 회사가 이미 섬의 98%를 사들여 섬을 사유화하다 싶이 했다. 거대 기업이 탐하는 이유는 그만큼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아름답다는 반증이다. CJ가 굴업도 섬 전체의 상층부를 잘라내고 골프장까지 만들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골프장건설이 취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