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야도 해안능선길

백섬백길

85

6.8km

덕적도와 함께 백제 침략군 당나라 30만 대군이 주둔했던 섬

소야도 해안능선길

백섬백길

85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소야리

코스 소개

소야도 둘레길은 떼뿌루해수욕장에서 출발, 막끝과 짐대끝을 거쳐 다시 떼뿌루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우거진 소나무 길과 짐대끝에서 만나는 등대가 인상적이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길을 걸으며 숲길을 걷다보면 수도권과 가까운 이만한 힐링코스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큰 교차점마다 이정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넓은 편이어서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코스세부정보

떼뿌루해변( 0 km) 막끝( 1.8 km) 반도골( 1.7 km) 짐대끝( 1 km) 떼뿌루해변( 2.3 km)

교통

1

출발지

도착지

2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소야도라는 지명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연관이 깊다고 전해진다. 신라와 연합한 당나라 군대는 백제 침략 전 덕적도를 배후진지로 삼아 군대와 군수물자를 주둔 시켰다. 덕적도는 백제침략 전후 4개월 동안 당나라군 13만명이 진주했다. 덕적도와 바짝 붙은 소덕적도가 소야도가 된 것은 당시에 이 섬에도 당나라군이 주둔 했던 까닭이다. 섬에는 당나라군의 진지였다는 담안(중노골)이라는 유적이 남아있다. 100여평의 땅에 초석을 쌓았던 자취다.

덕적도와 소야도 두 섬 사이 좁은 해협은 강 같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이 작은 바다를 독강이라 부른다. 바다의 강, 과거에는 힘들게 노를 저어 오갔을 독강을 오늘 사공은 기관배로 손쉽게 오간다. 덕적도 도우 선착장을 건너오니 5분 만에 소야도 도우 선착장이다. 두 섬의 나루터 마을 이름이 같다. 도우 마을. 예전에 덕적도와 소야도 섬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도우’라 했다고 한다. 번화한 마을을 어디나 읍내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경우일까. 도우, 도우 하다 보니 지명으로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소야도 큰말의 민박집에 들었다. 소야도에는 도우, 텃골, 큰말 등 세 개의 마을이 있다. 큰말은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보건진료소와 파출소 초소가 이 마을에 있다. 근처에 떼뿌리 해수욕장이 있어서 여름에는 제법 많은 피서객들이 들어오지만 철지만 섬은 한적하다. 민박집도 제법 여러 곳이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한두 군데의 행정 관청이 있다. 모두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겠지만 섬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기관은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농수협도 아니다. 보건소다. 특히 병의원이 없는 작은 섬일수록 보건소는 주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이다. 최근에 신축한 소야도 보건진료소 건물은 소야도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소중한 기관이다. 보통 군 보건소 산하에 면 단위마다 보건지소가 있고 보건지소 아래 보건 진료소가 있다. 대게 보건지소에서는 의대나 한의대를 갓 졸업한 공중보건의들이 병역의무를 대신해서 진료를 한다. 하지만 보건 진료소에는 공중보건의가 없다. 대신에 임상 경험이 있는 간호사들이 특수교육을 이수한 뒤 소장으로 부임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소야도 보건 진료소장을 만났다. 소장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다가 진료소장으로 채용되어 4년간 전남 흑산의 외딴 섬에서 근무했다. 옹진군 소야도로 온 지는 1년 남짓. 흑산의 섬들보다 웅진의 섬들이 의료 여건이 낫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대도시인 인천과의 교통이 편리한 까닭이다. 환자를 돌보는데 따른 심적 부담도 먼 바다 외딴 섬보다 덜하다. 응급환자의 경우 후송이 쉽기 때문이다.

보건소에도 일정한 근무 시간이 있지만 의료기관이 하나뿐인 소야도 같은 섬에서는 근무 시간이 따로 없다. 한밤중에라도 환자가 찾아오면 치료해 드려야 한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소야도에서는 성인병과 만성질환, 퇴행성 관절염, 위염, 고협압, 당뇨 등이 가장 흔하고 중요하게 관리해야할 질병들이다. 보건진료소는 치료보다는 주민들의 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큰 임무다. 섬에서만 5년, 소장은 섬의 노인들이 고된 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병을 더 이상 키우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노인들이 안타깝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끼니 잇기도 어려운 노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의식주에 큰 어려움이 없어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놀면 안 된다. 움직일 수 있으면 일해야 한다. 그러면서 일에서 못 벗어나요.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요. 일을 안 하면 아프시대요. 좀 쉬시고 자기 몸도 아끼시고, 인천의 자식들한테도 다녀오고 그러시라 해도 말씀을 안 들어요. 그 추운 겨울에도 바닷바람 맞으며 굴을 깨요. 거기다 끼니까지 거르시면서 일하니 안 아플 수가 없죠.”

소장은 노인들이 아픔을 호소하면 진통제를 주지만 그 때 뿐이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다시 아프다. “놀면 안돼” “놀면 뭐해” 하는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노인들은 그처럼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자식들 기르고 교육 시키고 먹고 살만큼 돈도 모았지만 그로 인해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덤으로 얻었다. 노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을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쓰는 법이 없다. 손자, 손녀들 용돈을 주거나 더러 자식들 가계에도 보태준다. 그도 아니면 그저 돈 쌓이는 재미로 일을 한다.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좀 쉬세요’ 하면 ‘응 알았어’ 해놓고 또 일하러 가세요. 쉬면 불안하시데요. 흑산에서는 팔십 넘은 할머니들도 물질을 해요. 할머니들은 숨 꼴깍꼴깍 하시면서도 바닷속에 들어가셔야 편안하시데요. 큰 병이 의심되는 노인 분들테는 큰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시라고 권해요. 그러면 ‘죽으면 그만이지, 이만큼 살았는데 뭘 진료를 받어.’ 그러세요.”

큰말 골목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대야 두개에 비단 조개가 가득하다. 할머니 혼자서 막 잡아온 것이다. 할머니는 바다를 오가며 동이로 바닷물을 퍼 나른다. 비단 조개를 우려내기 위해서다. 모래와 펄이 섞인 갯벌에 살기 때문에 모래와 펄을 뱉어내게 해야 먹을 수 있다. 서너 번씩 물을 갈아 주어야 제대로 해금이 된다. 비단 조개는 주로 젓갈을 담거나 삶아서 말린다. 섬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인천으로 팔려가 칼국수나 찌개, 중국음식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지금 물이 적어서 그렇지 물을 하나 가득 칠렁칠렁 부으면 쓱쓱 씌어 다녀요. 쓱쓱 씌어 다녀.”

바닷물 속에서 비단조개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는 말씀이다. 소야도는 근처의 다른 섬들에 비해 갯벌이 넓고 풍성해서 굴과 조개, 낙지와 소라 등이 많이 난다. 꽃게 철이면 수확한 꽃게 그물 풀어주는 일도 노인들의 몫이다. 밭도 놀리지 않는다. 여름이면 옥수수 심어 관광객들에게 삶아서 판다. 산에서 취와 고사리 등의 나물과 둥굴레를 캐고, 오디를 따서 술을 담고, 뽕잎차와 솔잎차를 만들어 내다 판다. 움직이기만 하면 사철 돈이 되는 섬. 주민들은 움직이면 소득이 생기는데 일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늙고 병이 들어도 쉽게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갯벌과 밭과 산에서 무엇이든 캐고 말려 선착장으로 가지고 나가 앉아만 있으면 관광객들이 사준다. 그 돈으로 “어린 손주들 용돈도 주고 대학생 손주 핸드폰도 사”준다. 자식들 가르치고 출가시킨 뒤 이제는 손주들 대학 등록금까지 대준다.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심지어 병이 걸려도 병원도 가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희생하는 노인들. 노인들이야 어찌 대가를 바라겠는가마는 대체 손주들은 그 마음의 얼마쯤이나 헤아려 줄까.

소야도 해안능선길

백섬백길

85

6.8km

덕적도와 함께 백제 침략군 당나라 30만 대군이 주둔했던 섬

코스 소개

소야도 둘레길은 떼뿌루해수욕장에서 출발, 막끝과 짐대끝을 거쳐 다시 떼뿌루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우거진 소나무 길과 짐대끝에서 만나는 등대가 인상적이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길을 걸으며 숲길을 걷다보면 수도권과 가까운 이만한 힐링코스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큰 교차점마다 이정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넓은 편이어서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코스세부정보

떼뿌루해변( 0 km) 막끝( 1.8 km) 반도골( 1.7 km) 짐대끝( 1 km) 떼뿌루해변( 2.3 km)

교통

1

출발지

도착지

2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소야도라는 지명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연관이 깊다고 전해진다. 신라와 연합한 당나라 군대는 백제 침략 전 덕적도를 배후진지로 삼아 군대와 군수물자를 주둔 시켰다. 덕적도는 백제침략 전후 4개월 동안 당나라군 13만명이 진주했다. 덕적도와 바짝 붙은 소덕적도가 소야도가 된 것은 당시에 이 섬에도 당나라군이 주둔 했던 까닭이다. 섬에는 당나라군의 진지였다는 담안(중노골)이라는 유적이 남아있다. 100여평의 땅에 초석을 쌓았던 자취다.

덕적도와 소야도 두 섬 사이 좁은 해협은 강 같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이 작은 바다를 독강이라 부른다. 바다의 강, 과거에는 힘들게 노를 저어 오갔을 독강을 오늘 사공은 기관배로 손쉽게 오간다. 덕적도 도우 선착장을 건너오니 5분 만에 소야도 도우 선착장이다. 두 섬의 나루터 마을 이름이 같다. 도우 마을. 예전에 덕적도와 소야도 섬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도우’라 했다고 한다. 번화한 마을을 어디나 읍내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경우일까. 도우, 도우 하다 보니 지명으로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소야도 큰말의 민박집에 들었다. 소야도에는 도우, 텃골, 큰말 등 세 개의 마을이 있다. 큰말은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보건진료소와 파출소 초소가 이 마을에 있다. 근처에 떼뿌리 해수욕장이 있어서 여름에는 제법 많은 피서객들이 들어오지만 철지만 섬은 한적하다. 민박집도 제법 여러 곳이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한두 군데의 행정 관청이 있다. 모두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겠지만 섬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기관은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농수협도 아니다. 보건소다. 특히 병의원이 없는 작은 섬일수록 보건소는 주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이다. 최근에 신축한 소야도 보건진료소 건물은 소야도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소중한 기관이다. 보통 군 보건소 산하에 면 단위마다 보건지소가 있고 보건지소 아래 보건 진료소가 있다. 대게 보건지소에서는 의대나 한의대를 갓 졸업한 공중보건의들이 병역의무를 대신해서 진료를 한다. 하지만 보건 진료소에는 공중보건의가 없다. 대신에 임상 경험이 있는 간호사들이 특수교육을 이수한 뒤 소장으로 부임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소야도 보건 진료소장을 만났다. 소장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다가 진료소장으로 채용되어 4년간 전남 흑산의 외딴 섬에서 근무했다. 옹진군 소야도로 온 지는 1년 남짓. 흑산의 섬들보다 웅진의 섬들이 의료 여건이 낫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대도시인 인천과의 교통이 편리한 까닭이다. 환자를 돌보는데 따른 심적 부담도 먼 바다 외딴 섬보다 덜하다. 응급환자의 경우 후송이 쉽기 때문이다.

보건소에도 일정한 근무 시간이 있지만 의료기관이 하나뿐인 소야도 같은 섬에서는 근무 시간이 따로 없다. 한밤중에라도 환자가 찾아오면 치료해 드려야 한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소야도에서는 성인병과 만성질환, 퇴행성 관절염, 위염, 고협압, 당뇨 등이 가장 흔하고 중요하게 관리해야할 질병들이다. 보건진료소는 치료보다는 주민들의 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큰 임무다. 섬에서만 5년, 소장은 섬의 노인들이 고된 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병을 더 이상 키우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노인들이 안타깝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끼니 잇기도 어려운 노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의식주에 큰 어려움이 없어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놀면 안 된다. 움직일 수 있으면 일해야 한다. 그러면서 일에서 못 벗어나요.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요. 일을 안 하면 아프시대요. 좀 쉬시고 자기 몸도 아끼시고, 인천의 자식들한테도 다녀오고 그러시라 해도 말씀을 안 들어요. 그 추운 겨울에도 바닷바람 맞으며 굴을 깨요. 거기다 끼니까지 거르시면서 일하니 안 아플 수가 없죠.”

소장은 노인들이 아픔을 호소하면 진통제를 주지만 그 때 뿐이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다시 아프다. “놀면 안돼” “놀면 뭐해” 하는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노인들은 그처럼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자식들 기르고 교육 시키고 먹고 살만큼 돈도 모았지만 그로 인해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덤으로 얻었다. 노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을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쓰는 법이 없다. 손자, 손녀들 용돈을 주거나 더러 자식들 가계에도 보태준다. 그도 아니면 그저 돈 쌓이는 재미로 일을 한다.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좀 쉬세요’ 하면 ‘응 알았어’ 해놓고 또 일하러 가세요. 쉬면 불안하시데요. 흑산에서는 팔십 넘은 할머니들도 물질을 해요. 할머니들은 숨 꼴깍꼴깍 하시면서도 바닷속에 들어가셔야 편안하시데요. 큰 병이 의심되는 노인 분들테는 큰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시라고 권해요. 그러면 ‘죽으면 그만이지, 이만큼 살았는데 뭘 진료를 받어.’ 그러세요.”

큰말 골목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대야 두개에 비단 조개가 가득하다. 할머니 혼자서 막 잡아온 것이다. 할머니는 바다를 오가며 동이로 바닷물을 퍼 나른다. 비단 조개를 우려내기 위해서다. 모래와 펄이 섞인 갯벌에 살기 때문에 모래와 펄을 뱉어내게 해야 먹을 수 있다. 서너 번씩 물을 갈아 주어야 제대로 해금이 된다. 비단 조개는 주로 젓갈을 담거나 삶아서 말린다. 섬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인천으로 팔려가 칼국수나 찌개, 중국음식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지금 물이 적어서 그렇지 물을 하나 가득 칠렁칠렁 부으면 쓱쓱 씌어 다녀요. 쓱쓱 씌어 다녀.”

바닷물 속에서 비단조개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는 말씀이다. 소야도는 근처의 다른 섬들에 비해 갯벌이 넓고 풍성해서 굴과 조개, 낙지와 소라 등이 많이 난다. 꽃게 철이면 수확한 꽃게 그물 풀어주는 일도 노인들의 몫이다. 밭도 놀리지 않는다. 여름이면 옥수수 심어 관광객들에게 삶아서 판다. 산에서 취와 고사리 등의 나물과 둥굴레를 캐고, 오디를 따서 술을 담고, 뽕잎차와 솔잎차를 만들어 내다 판다. 움직이기만 하면 사철 돈이 되는 섬. 주민들은 움직이면 소득이 생기는데 일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늙고 병이 들어도 쉽게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갯벌과 밭과 산에서 무엇이든 캐고 말려 선착장으로 가지고 나가 앉아만 있으면 관광객들이 사준다. 그 돈으로 “어린 손주들 용돈도 주고 대학생 손주 핸드폰도 사”준다. 자식들 가르치고 출가시킨 뒤 이제는 손주들 대학 등록금까지 대준다.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심지어 병이 걸려도 병원도 가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희생하는 노인들. 노인들이야 어찌 대가를 바라겠는가마는 대체 손주들은 그 마음의 얼마쯤이나 헤아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