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도 지오트레일

백섬백길

82

12.3km

호주 샤크만에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10억년의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 그리고 달빛에 빛나는 분바위 신비로운 풍경

소청도 지오트레일

백섬백길

82

인천 옹진군 대청면 소청리

코스 소개

소청도에는 분바위와 월띠라는 지질명소가 있다. 소청도 지오트레일이라는 길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 까닭이다. 또한 산소를 만들어 육지에도 생명이 살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인 10억년 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다. 서해안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등대인 소청도 등대와 예동포구 북쪽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은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코스세부정보

탑동항( 0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0.7 km) 소청도등대( 3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3 km) 국가철새연구센터( 0.5 km) 분바위/월띠탐방로( 2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2.4 km) 탑동항( 0.7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소청도에는 설산처럼 흰 바위산이 있다. 눈에 덮인 것처럼 하얀, 이 바위산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바위산은 표면이 풍화돼 분칠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분바위란 이름을 얻었다. 분바위는 달빛을 바르면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도 보인다. 월띠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등대가 없던 옛날, 뱃사람들은 칠흑의 밤바다에서 달빛에 물든 분바위 흰 빛을 보고 뱃길을 찾았다. 분바위는 소청도 남동쪽 해변에 있는 대리암 덩어리다. 대리암은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긴 암석이다.

분바위 주변 크고 작은 암석들에는 10억년이라는 시원의 시간으로부터 온 생명의 화석들이 깃들어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바다, 호수 등에 서식하는 남조류나 남조박테리아 등의 화석이 쌓여 암석이 된 것으로 석회암의 일종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다. 이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원생대 후기인 10억 년 전에 형성된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화석이다. 남조세균은 지구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원시미생물이다. 남조세균들이 산소를 만들어낸 덕분에 지구상에 무수한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람인 우리도 지구에 살 수 있게 됐다.

북한지역에서는 20억 년 전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보고 된 적이 있지만 남한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서는 소청도의 화석이 가장 오랜 된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더없이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하지만 이들 자연유산은 일제 때부터 훼손되어 왔다. 소연평도의 자석 철광산과 함께 일제는 소청도의 대리암도 대량 체굴 해 갔다. 해방 후에도 1980년대 초까지 소청도에서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무늬를 이용한 문양석 가공 공장이 가동돼 많은 화석들이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2009년에야 천연기념물로 지정고시했다.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생업에 지장이 올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 해안은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누대를 이어온 주민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지정이 불편을 주고 불이익을 준다면 반가워할 주민은 누구도 없다. 천연기념물이 제대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지정만큼 중요한 것은 이 자연유산의 보존이 곧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정부의 정책이다.  

혹시 돌너와 집을 아시는가? 소청도에는 최근까지도 돌너와 집이 남아 있었다. 덕적도 진리 마을에도 한 채 있었다. 강원도 산간지방의 나무 너와집은 많이 알려졌지만 돌 너와집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돌너와는 기와보다 견고 했다. 그래서 기와천년 (돌)너와 만년이란 말도 있었다. 20세기 들기 전까지만 해도 소청도의 집들은 대부분 볏짚이나 띠(새)로 엮은 이엉을 얹었다. 그런데 1900년 초에 노순국이란 이가 소청도에서 넓적하고 반듯한 돌 너와 광맥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소청도 사람들은 지붕 걱정이 없어졌다. 모두들 돌 너와로 지붕을 덮었다. 너와의 발견이 섬사람들에게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 때 너와가 벗겨지고 스레이트가 지붕을 차지했다. 초가지붕이야 해마다 해 올리기 번거롭기 때문에 바꾸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기와보다도 더 견고한 너와를 버리고 인체에 유해한 석면 덩어리 스레이트를 덮게 한 것은 코메디였다. 

그런데 몇 해 만에 다시 소청도를 찾아오니 마지막 한 채 남았던 돌너와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방공호가 들어섰다. 덕적도의 돌너와 집도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만 보면 없애지 못해 안달이다. 시기심 많고 순간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영원처럼 보이는 것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은 혹시 아닐까!

소청도 인근의 백령도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농토가 넓다. 대청도도 농토가 제법 넓고 산림이 울창하다. 하지만 소청도가 가진 자원은 바다뿐이다. 주민들 80% 이상이 수산업에 종사한다. 그래서 예부터 이 지방에서는 “먹고 남는 백령도, 때고 남는 대청도, 쓰고 남는 소청도”란 이야기가 있었다. 바다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그만큼 컸단 뜻이다.

사람들은 홍어하면 흑산도만 떠올리지만 한때 소청도는 백령도나 대청도와 함께 홍어 잡이로도 유명했었다. 홍어잡이로 돈을 쓸어 담은 적도 있었다. 지나친 남획으로 이제 홍어는 거의 사라졌고 어선들은 놀래미 잡이로 돌아 섰다. 일제하에서는 대마도의 잠수부들이 대거 몰려와 전복, 해삼 등을 마구잡이로 채취해 갔다. 그 후에도 제주도 해녀들까지 와서 작업을 할 정도로 소청도 근해는 옛날부터 해삼의 대량 서식처다. 지금도 소청도 바다에서는 해삼이 많이 잡힌다.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전어지(佃漁志)편에는 “해삼은 바다의 생물 중 사람을 가장 이롭게 하는 것”이라 했다. 해삼은 동물 중 드물게 알칼리성이다. 해삼은 어떤 생물보다 재생력이 강하다. 배를 따서 내장을 꺼낸 뒤 바다로 돌려보내면 일주일 안에 배가 아물고 3개월이면 다시 내장이 꽉 찬다. 반으로 잘라도 70일이면 두 개의 독립된 개체로 살아난다. 그래서 일본의 시코쿠지방에서는 해삼 내장만을 얻기 위해 해삼을 양식한다. 해삼의 내장을 꺼내고 다시 바다에 넣어 내장을 재생시키기를 거듭하는 것이다. 여전히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섬사람들도 해삼처럼 생명력이 강하다. 

노화동 마을 끝자락 절벽에는 1908년 설치돼 100년 동안 불을 밝혀온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절벽에서 끝나지만 등대의 길은 절벽에서 비로소 시작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빛이 시작된다. 등대 불빛은 19마일 바닷길에서 멈추지만 빛의 파장은 끝이 없다. 등대의 불빛으로 인해 소청도 밤바다 어선들의 항로는 평안하다.

삶은 매일 매일이 불안하고 혼돈스럽다. 소청도 등대처럼 삶의 안전을 밝혀 줄 등대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칠흑 같은 밤인데 어디에도 불빛 한 점 없다. 어쩌면 삶에는 항로를 알려줄 등대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 가는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삶은 없다. 어디에서도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일 뿐. 해안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소리 거세지고 섬은 바람 속에서 깊어진다.

소청도 지오트레일

백섬백길

82

12.3km

호주 샤크만에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10억년의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 그리고 달빛에 빛나는 분바위 신비로운 풍경

코스 소개

소청도에는 분바위와 월띠라는 지질명소가 있다. 소청도 지오트레일이라는 길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 까닭이다. 또한 산소를 만들어 육지에도 생명이 살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인 10억년 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다. 서해안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등대인 소청도 등대와 예동포구 북쪽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은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코스세부정보

탑동항( 0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0.7 km) 소청도등대( 3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3 km) 국가철새연구센터( 0.5 km) 분바위/월띠탐방로( 2 km)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장( 2.4 km) 탑동항( 0.7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소청도에는 설산처럼 흰 바위산이 있다. 눈에 덮인 것처럼 하얀, 이 바위산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바위산은 표면이 풍화돼 분칠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분바위란 이름을 얻었다. 분바위는 달빛을 바르면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도 보인다. 월띠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등대가 없던 옛날, 뱃사람들은 칠흑의 밤바다에서 달빛에 물든 분바위 흰 빛을 보고 뱃길을 찾았다. 분바위는 소청도 남동쪽 해변에 있는 대리암 덩어리다. 대리암은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긴 암석이다.

분바위 주변 크고 작은 암석들에는 10억년이라는 시원의 시간으로부터 온 생명의 화석들이 깃들어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바다, 호수 등에 서식하는 남조류나 남조박테리아 등의 화석이 쌓여 암석이 된 것으로 석회암의 일종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다. 이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원생대 후기인 10억 년 전에 형성된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화석이다. 남조세균은 지구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원시미생물이다. 남조세균들이 산소를 만들어낸 덕분에 지구상에 무수한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람인 우리도 지구에 살 수 있게 됐다.

북한지역에서는 20억 년 전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보고 된 적이 있지만 남한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서는 소청도의 화석이 가장 오랜 된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더없이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하지만 이들 자연유산은 일제 때부터 훼손되어 왔다. 소연평도의 자석 철광산과 함께 일제는 소청도의 대리암도 대량 체굴 해 갔다. 해방 후에도 1980년대 초까지 소청도에서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무늬를 이용한 문양석 가공 공장이 가동돼 많은 화석들이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2009년에야 천연기념물로 지정고시했다.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생업에 지장이 올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 해안은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누대를 이어온 주민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지정이 불편을 주고 불이익을 준다면 반가워할 주민은 누구도 없다. 천연기념물이 제대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지정만큼 중요한 것은 이 자연유산의 보존이 곧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정부의 정책이다.  

혹시 돌너와 집을 아시는가? 소청도에는 최근까지도 돌너와 집이 남아 있었다. 덕적도 진리 마을에도 한 채 있었다. 강원도 산간지방의 나무 너와집은 많이 알려졌지만 돌 너와집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돌너와는 기와보다 견고 했다. 그래서 기와천년 (돌)너와 만년이란 말도 있었다. 20세기 들기 전까지만 해도 소청도의 집들은 대부분 볏짚이나 띠(새)로 엮은 이엉을 얹었다. 그런데 1900년 초에 노순국이란 이가 소청도에서 넓적하고 반듯한 돌 너와 광맥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소청도 사람들은 지붕 걱정이 없어졌다. 모두들 돌 너와로 지붕을 덮었다. 너와의 발견이 섬사람들에게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 때 너와가 벗겨지고 스레이트가 지붕을 차지했다. 초가지붕이야 해마다 해 올리기 번거롭기 때문에 바꾸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기와보다도 더 견고한 너와를 버리고 인체에 유해한 석면 덩어리 스레이트를 덮게 한 것은 코메디였다. 

그런데 몇 해 만에 다시 소청도를 찾아오니 마지막 한 채 남았던 돌너와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방공호가 들어섰다. 덕적도의 돌너와 집도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만 보면 없애지 못해 안달이다. 시기심 많고 순간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영원처럼 보이는 것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은 혹시 아닐까!

소청도 인근의 백령도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농토가 넓다. 대청도도 농토가 제법 넓고 산림이 울창하다. 하지만 소청도가 가진 자원은 바다뿐이다. 주민들 80% 이상이 수산업에 종사한다. 그래서 예부터 이 지방에서는 “먹고 남는 백령도, 때고 남는 대청도, 쓰고 남는 소청도”란 이야기가 있었다. 바다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그만큼 컸단 뜻이다.

사람들은 홍어하면 흑산도만 떠올리지만 한때 소청도는 백령도나 대청도와 함께 홍어 잡이로도 유명했었다. 홍어잡이로 돈을 쓸어 담은 적도 있었다. 지나친 남획으로 이제 홍어는 거의 사라졌고 어선들은 놀래미 잡이로 돌아 섰다. 일제하에서는 대마도의 잠수부들이 대거 몰려와 전복, 해삼 등을 마구잡이로 채취해 갔다. 그 후에도 제주도 해녀들까지 와서 작업을 할 정도로 소청도 근해는 옛날부터 해삼의 대량 서식처다. 지금도 소청도 바다에서는 해삼이 많이 잡힌다.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전어지(佃漁志)편에는 “해삼은 바다의 생물 중 사람을 가장 이롭게 하는 것”이라 했다. 해삼은 동물 중 드물게 알칼리성이다. 해삼은 어떤 생물보다 재생력이 강하다. 배를 따서 내장을 꺼낸 뒤 바다로 돌려보내면 일주일 안에 배가 아물고 3개월이면 다시 내장이 꽉 찬다. 반으로 잘라도 70일이면 두 개의 독립된 개체로 살아난다. 그래서 일본의 시코쿠지방에서는 해삼 내장만을 얻기 위해 해삼을 양식한다. 해삼의 내장을 꺼내고 다시 바다에 넣어 내장을 재생시키기를 거듭하는 것이다. 여전히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섬사람들도 해삼처럼 생명력이 강하다. 

노화동 마을 끝자락 절벽에는 1908년 설치돼 100년 동안 불을 밝혀온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절벽에서 끝나지만 등대의 길은 절벽에서 비로소 시작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빛이 시작된다. 등대 불빛은 19마일 바닷길에서 멈추지만 빛의 파장은 끝이 없다. 등대의 불빛으로 인해 소청도 밤바다 어선들의 항로는 평안하다.

삶은 매일 매일이 불안하고 혼돈스럽다. 소청도 등대처럼 삶의 안전을 밝혀 줄 등대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칠흑 같은 밤인데 어디에도 불빛 한 점 없다. 어쩌면 삶에는 항로를 알려줄 등대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 가는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삶은 없다. 어디에서도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일 뿐. 해안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소리 거세지고 섬은 바람 속에서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