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 둘레길

백섬백길

79

2.5km

도시 가까이 고향의 원형이 살아 있는 안산의 섬

육도 둘레길

백섬백길

79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코스 소개

찾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적은 조용하기 그지 없는 섬이다. 수도권에 이토록 조용한 곳이 있을까. 길을 걷는 동안 마치 무인도를 걷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육도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복지회관이 나온다. 종종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이 뒷길부터는 오직 파도소리와 걸음을 떼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자갈밭해변과 섬 반대쪽 갈림길 아래에 있는 작은 해변은 언젠가 복잡한 삶에 지칠 때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코스세부정보

육도항( 0 km) 복지회관( 0.4 km) 자갈밭해변( 0.4 km) 발전소( 1 km) 복지회관( 0.3 km) 육도항( 0.4 km)

교통

1

출발지

도착지

2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오래전 육도를 오갔을 때 탔던 배는 제 3 왕경호였다.(지금은 서해누리호로 바뀌었다) 작은 여객선 선실은 먼 길 가는 여객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누웠다. 느리고 낡은 여객선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황해바다 탁한 물결 위를 떠간다. 섬사람들은 낯익은 바다 풍경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육도로 가는 2시간의 뱃길은 길고 지루하다. 인천항에서 출항하는 가장 작고 느린 여객선. 오래된 배지만 이 항로의 섬들, 육도와 풍도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연락선이다. 선장은 33년 동안이나 육도 항로를 오고 갔다. 옛날에는 이 항로의 여객선이 연안부두를 출발해 안산의 국화도, 당진 장고항, 안산 육도, 당진의 난지도를 거처 서산의 삼길리 까지 갔다가 회항했다. 육로 교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이 지역 사람들을 인천이나 서울로 이어주는 가장 빠른 통로가 이 뱃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인천에서 당진 장고항이나 서산 삼길리 같은 육지의 포구까지 운항하는 여객선은 없다. 당진의 난지도 사람들도 대부분은 육지로 편입된 당진의 도비도행 정기 여객선을 이용 한다. 육도, 풍도까지는 매일 운항 하는 여객선이 난지도까지는 일주일에 3번만 운항한다. 이 지역의 섬들은 인천과 연고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섬 주민 자녀들 대부분이 인천에 자리 잡아 살거나 인천에 집이 있다. 난지도, 육도, 풍도 아이들은 여전히 중학교부터는 인천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초등학교 4학년만 되도 인천으로 아이들을 보내 교육 시키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도시 아이들에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이들의 조기 유학을 부추긴다.      

왕경호 매점에서는 삶은 계란도 팔고, 음료와 간식거리들도 판다. 매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인상이 참 선하다. 그녀는 20년 동안이나 배를 탔다. 백령도, 연평도 항로까지 안다녀본 뱃길이 없다. 어선이나 화물선 등은 여자가 배 타는 것을 금기시 했지만 여객선은 그런 금기가 없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오랫동안 배를 탔다. 그녀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들은 바다를 좋아해요. 하루 종일 봐도 안 질려. 날씨하고 바다색이 똑 같아요.  바다를 은빛, 금빛 물결이라고 표현한 것이 하나도 안 틀려요. 에메랄드 같은 바다도 있고, 금빛  바다도 있어요. 그때는 바다가 얼마나 예쁜데요.”

잠시 풍도에 기항했던 여객선이 육도로 향한다. 육도 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섬 하나가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없다. 섬은 무인도인 종육도. 육도열도의 섬중 하나인 중육도가 골재 채취로 반쯤 잘려나간 것이다. 갯벌을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겠다는 정부가 멀쩡한 땅인 섬들을 없애버리는 데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육도 입구에도 전망 좋은 해변에는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관광업의 혜택은 대다수 섬 주민들과는 무관하다. 대부분이 노인인 섬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캐고 굴을 깨다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섬이 개발되고 관광객이 몰려와도 이익을 얻는 사람은 언제나 이재에 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육도 앞바다에도 우럭 가두리 양식장이 하나 있다. 민박집 주인 이야기를 들으니 이 양식장의 주인 또한 육도 주민이 아니다. 주인은 서울 사람이다. 주민 중에는 양식장 시설을 할 큰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유일한 의지처는 마을 앞의 갯벌이다. 겨울철 굴 채취가 시작되기 전까지 육도 갯벌에서는 바지락을 캔다. 종패를 뿌리지 않아 갯벌에는 바지락이 많지 않다. 주민들도 미래를 위해서는 종패를 넣은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장의 생활이 어려워 종패를 사다 넣을 엄두를 못 낸다. 썰물 때면 노인들은 쪼그려 앉아 돌들을 들어내고 호미로 바닥을 긁어 바지락을 잡는다. 광맥을 찾듯이 조심스럽다. 

“바지락은 종패를 뿌려가며 캐야 있는디, 캐서 먹기만 하니까 이렇게 없어요.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것 줍느라 밭 매듯해요. 종패 살라면 돈 들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종패 살 돈이 어딨어요.”

이 섬에도 노인층과 젊은 층간의 세대 간 빈부 격차가 크다.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게 조개와 굴을 캐도 소득은 적다. 젊은 사람들은 어장 배를 부려 꽃게와 물고기를 잡아 큰 소득을 올린다. 노인들은 한사리에 열흘 남짓, 한 달에 이십여 일을 갯벌에 살지만 소득은 보잘 것 없다.

육도에는 토박이들이 많지 않다. 육도에 사람이 적게 살 때는 4~5가구까지 줄어 든 적도 있었다. 지금은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한 어민들과 고향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이 늘어나 다시 20여 가구 30명으로 주민이 늘었다. 바지락을 캐는 여자도 풍도가 고향이다. 인천에 나가 살다 육도로 들어온 지 4년 남짓 됐다. 바지락을 캐는 노인 한 사람은 20여 년 전에 인천에서 육도로 건너와 지금껏 눌러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인천과 서울에 집이나 연고가 있다.

그래도 섬의 품은 넉넉하다. 맨몸으로 들어와도 부지런하면 밥은 먹여 준다. 노동은 고되지만 살아갈 양식은 준다. 갯벌은 자연이 준 큰 선물이다.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동안 굴은 여물고 굴을 깨는 동안 바지락은 갯벌 속에서 살을 찌운다. 조수가, 바다와 태양과 달이 이들을 키운다. 시간을 견디는 힘만 있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노인은 그래도 도시에서 폐지를 줍고 사는 것보다는 섬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그런 갯벌이 고맙다.

“어디든지 살기가 다 힘들잖아요. 그래도 이런 디는 이거라도 있으니까 늙은 할먼네가 먹고 살지.”

면적 0.13㎢. 섬을 다 돌아보아도 30분이면 족할 정도로 작은 섬이지만 섬이 주는 느낌은 편안하다. 주변의 여러 섬들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섬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짧다. 마을은 섬의 동쪽인 육지 방향을 향해 들어 서 있다. 마을의 앞쪽에는 중육도와, 입파도, 국화도, 당진화력발전소, 대호 방조제 등이 있다. 마을의 서쪽 해변으로 넘어가는 길은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해변의 서쪽에는 풍도가 있고 북쪽으로는 승봉도와 이작도 등 옹진군의 섬들이 도열해 있다. 이작도 해변처럼 육도와 풍도 근해에도 풀등이 있다.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밭, 풀등은 150만평이 넘는 거대한 모래밭이었다. 꽃게 등 수많은 어류의 산란장이기도 한 풀등은 모래 채취로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허가는 유리의 재료인 규사 채취로 났지만 실상은 골재채취다. 안산 시의회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로인해 한동안 채취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오래잖아 다시 채취 허가가 주어졌다. 골재 채취를 위해 섬들이 통째로 잘려나가고 바다의 모래밭이 사라지고, 토건 마피아들의 탐욕앞에 섬이나 바다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은 없다.

육도에는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안방에서 물고기를 잡는 집으로 방송에 소개 됐던 노인이다. 노인은 그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뭔가 잘못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방송국에서 찾아온 촬영 팀은 바다에 인접한 노인의 집 안방에서 낚시를 던져 고기를 잡는 모습을 찍자고 했다 한다. 방송이 나간 뒤 찾아온 관광객들이 더러 찾아왔던 모양이다. 

“거짓으로 그러면 안되지. 우럭을 사와서 낚시에 매달자고 해서 그리 했는데. 그냥 재미로 하는 줄 알았지.”

노인도 그때는 재미 삼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촬영에 응했던 모양이다. 방송의 여파가 그리 클 줄 몰랐던 것이다. 노인은 그 일 때문에 한차례 큰 곤욕을 치렀다.

“방송을 보고 안방에서 낚시해서 고기 잡겠다고 찾아오니. 잡히나 잡히지 않지. 그러니 피해 보는 사람도 생기고.”

노인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8순이 다된 순박한 섬 노인을 거짓 방송의 공범자로 만든 방송국이 얄밉다. 그 방송이 나간 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섬을 찾아와 다른 집에서 비슷한 거짓 프로그램을 촬영해 갔다 한다. 시청률에 목매고 선정성만을 추구하는 방송들의 폐해가 외딴 섬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육도 둘레길

백섬백길

79

2.5km

도시 가까이 고향의 원형이 살아 있는 안산의 섬

코스 소개

찾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적은 조용하기 그지 없는 섬이다. 수도권에 이토록 조용한 곳이 있을까. 길을 걷는 동안 마치 무인도를 걷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육도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복지회관이 나온다. 종종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이 뒷길부터는 오직 파도소리와 걸음을 떼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자갈밭해변과 섬 반대쪽 갈림길 아래에 있는 작은 해변은 언젠가 복잡한 삶에 지칠 때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코스세부정보

육도항( 0 km) 복지회관( 0.4 km) 자갈밭해변( 0.4 km) 발전소( 1 km) 복지회관( 0.3 km) 육도항( 0.4 km)

교통

1

출발지

도착지

2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오래전 육도를 오갔을 때 탔던 배는 제 3 왕경호였다.(지금은 서해누리호로 바뀌었다) 작은 여객선 선실은 먼 길 가는 여객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누웠다. 느리고 낡은 여객선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황해바다 탁한 물결 위를 떠간다. 섬사람들은 낯익은 바다 풍경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육도로 가는 2시간의 뱃길은 길고 지루하다. 인천항에서 출항하는 가장 작고 느린 여객선. 오래된 배지만 이 항로의 섬들, 육도와 풍도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연락선이다. 선장은 33년 동안이나 육도 항로를 오고 갔다. 옛날에는 이 항로의 여객선이 연안부두를 출발해 안산의 국화도, 당진 장고항, 안산 육도, 당진의 난지도를 거처 서산의 삼길리 까지 갔다가 회항했다. 육로 교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이 지역 사람들을 인천이나 서울로 이어주는 가장 빠른 통로가 이 뱃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인천에서 당진 장고항이나 서산 삼길리 같은 육지의 포구까지 운항하는 여객선은 없다. 당진의 난지도 사람들도 대부분은 육지로 편입된 당진의 도비도행 정기 여객선을 이용 한다. 육도, 풍도까지는 매일 운항 하는 여객선이 난지도까지는 일주일에 3번만 운항한다. 이 지역의 섬들은 인천과 연고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섬 주민 자녀들 대부분이 인천에 자리 잡아 살거나 인천에 집이 있다. 난지도, 육도, 풍도 아이들은 여전히 중학교부터는 인천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초등학교 4학년만 되도 인천으로 아이들을 보내 교육 시키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도시 아이들에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이들의 조기 유학을 부추긴다.      

왕경호 매점에서는 삶은 계란도 팔고, 음료와 간식거리들도 판다. 매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인상이 참 선하다. 그녀는 20년 동안이나 배를 탔다. 백령도, 연평도 항로까지 안다녀본 뱃길이 없다. 어선이나 화물선 등은 여자가 배 타는 것을 금기시 했지만 여객선은 그런 금기가 없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오랫동안 배를 탔다. 그녀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들은 바다를 좋아해요. 하루 종일 봐도 안 질려. 날씨하고 바다색이 똑 같아요.  바다를 은빛, 금빛 물결이라고 표현한 것이 하나도 안 틀려요. 에메랄드 같은 바다도 있고, 금빛  바다도 있어요. 그때는 바다가 얼마나 예쁜데요.”

잠시 풍도에 기항했던 여객선이 육도로 향한다. 육도 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섬 하나가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없다. 섬은 무인도인 종육도. 육도열도의 섬중 하나인 중육도가 골재 채취로 반쯤 잘려나간 것이다. 갯벌을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겠다는 정부가 멀쩡한 땅인 섬들을 없애버리는 데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육도 입구에도 전망 좋은 해변에는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관광업의 혜택은 대다수 섬 주민들과는 무관하다. 대부분이 노인인 섬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캐고 굴을 깨다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섬이 개발되고 관광객이 몰려와도 이익을 얻는 사람은 언제나 이재에 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육도 앞바다에도 우럭 가두리 양식장이 하나 있다. 민박집 주인 이야기를 들으니 이 양식장의 주인 또한 육도 주민이 아니다. 주인은 서울 사람이다. 주민 중에는 양식장 시설을 할 큰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유일한 의지처는 마을 앞의 갯벌이다. 겨울철 굴 채취가 시작되기 전까지 육도 갯벌에서는 바지락을 캔다. 종패를 뿌리지 않아 갯벌에는 바지락이 많지 않다. 주민들도 미래를 위해서는 종패를 넣은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장의 생활이 어려워 종패를 사다 넣을 엄두를 못 낸다. 썰물 때면 노인들은 쪼그려 앉아 돌들을 들어내고 호미로 바닥을 긁어 바지락을 잡는다. 광맥을 찾듯이 조심스럽다. 

“바지락은 종패를 뿌려가며 캐야 있는디, 캐서 먹기만 하니까 이렇게 없어요.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것 줍느라 밭 매듯해요. 종패 살라면 돈 들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종패 살 돈이 어딨어요.”

이 섬에도 노인층과 젊은 층간의 세대 간 빈부 격차가 크다.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게 조개와 굴을 캐도 소득은 적다. 젊은 사람들은 어장 배를 부려 꽃게와 물고기를 잡아 큰 소득을 올린다. 노인들은 한사리에 열흘 남짓, 한 달에 이십여 일을 갯벌에 살지만 소득은 보잘 것 없다.

육도에는 토박이들이 많지 않다. 육도에 사람이 적게 살 때는 4~5가구까지 줄어 든 적도 있었다. 지금은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한 어민들과 고향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이 늘어나 다시 20여 가구 30명으로 주민이 늘었다. 바지락을 캐는 여자도 풍도가 고향이다. 인천에 나가 살다 육도로 들어온 지 4년 남짓 됐다. 바지락을 캐는 노인 한 사람은 20여 년 전에 인천에서 육도로 건너와 지금껏 눌러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인천과 서울에 집이나 연고가 있다.

그래도 섬의 품은 넉넉하다. 맨몸으로 들어와도 부지런하면 밥은 먹여 준다. 노동은 고되지만 살아갈 양식은 준다. 갯벌은 자연이 준 큰 선물이다.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동안 굴은 여물고 굴을 깨는 동안 바지락은 갯벌 속에서 살을 찌운다. 조수가, 바다와 태양과 달이 이들을 키운다. 시간을 견디는 힘만 있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노인은 그래도 도시에서 폐지를 줍고 사는 것보다는 섬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그런 갯벌이 고맙다.

“어디든지 살기가 다 힘들잖아요. 그래도 이런 디는 이거라도 있으니까 늙은 할먼네가 먹고 살지.”

면적 0.13㎢. 섬을 다 돌아보아도 30분이면 족할 정도로 작은 섬이지만 섬이 주는 느낌은 편안하다. 주변의 여러 섬들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섬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짧다. 마을은 섬의 동쪽인 육지 방향을 향해 들어 서 있다. 마을의 앞쪽에는 중육도와, 입파도, 국화도, 당진화력발전소, 대호 방조제 등이 있다. 마을의 서쪽 해변으로 넘어가는 길은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해변의 서쪽에는 풍도가 있고 북쪽으로는 승봉도와 이작도 등 옹진군의 섬들이 도열해 있다. 이작도 해변처럼 육도와 풍도 근해에도 풀등이 있다.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밭, 풀등은 150만평이 넘는 거대한 모래밭이었다. 꽃게 등 수많은 어류의 산란장이기도 한 풀등은 모래 채취로 그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허가는 유리의 재료인 규사 채취로 났지만 실상은 골재채취다. 안산 시의회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로인해 한동안 채취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오래잖아 다시 채취 허가가 주어졌다. 골재 채취를 위해 섬들이 통째로 잘려나가고 바다의 모래밭이 사라지고, 토건 마피아들의 탐욕앞에 섬이나 바다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은 없다.

육도에는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안방에서 물고기를 잡는 집으로 방송에 소개 됐던 노인이다. 노인은 그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뭔가 잘못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방송국에서 찾아온 촬영 팀은 바다에 인접한 노인의 집 안방에서 낚시를 던져 고기를 잡는 모습을 찍자고 했다 한다. 방송이 나간 뒤 찾아온 관광객들이 더러 찾아왔던 모양이다. 

“거짓으로 그러면 안되지. 우럭을 사와서 낚시에 매달자고 해서 그리 했는데. 그냥 재미로 하는 줄 알았지.”

노인도 그때는 재미 삼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촬영에 응했던 모양이다. 방송의 여파가 그리 클 줄 몰랐던 것이다. 노인은 그 일 때문에 한차례 큰 곤욕을 치렀다.

“방송을 보고 안방에서 낚시해서 고기 잡겠다고 찾아오니. 잡히나 잡히지 않지. 그러니 피해 보는 사람도 생기고.”

노인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8순이 다된 순박한 섬 노인을 거짓 방송의 공범자로 만든 방송국이 얄밉다. 그 방송이 나간 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섬을 찾아와 다른 집에서 비슷한 거짓 프로그램을 촬영해 갔다 한다. 시청률에 목매고 선정성만을 추구하는 방송들의 폐해가 외딴 섬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