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도 둘레길

백섬백길

70

6km

어청도와 함께 고대 중국 제나라 왕 전횡이 다스리던 전설의 섬, 수백년 노거수들이 도열한 신령한 당산 숲

외연도 둘레길

백섬백길

70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리

코스 소개

2천년 전 중국 제나라 왕과 군사 5백이 망명해 살던 섬, 외연도. 내내 바다를 보면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은 외연도 여행의 백미다. 외연도 둘레길은 서방파제 망재산 등산로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산정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망재산 뒤안을 돌아 고래의 성기처럼 불쑥 솟아있는 ‘고래조지’ 길을 빠져나오면 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고래조지는 굴업도의 개머리 같은 초지다. 무마도,오도, 석도 등 무인도를 품은 외연도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코스세부정보

외연도항( 0 km) 망재봉( 1 km) 고래조지( 0.3 km) 고리금( 0.7 km) 큰멍금( 1.2 km) 노랑배( 1 km) 봉화산( 0.6 km) 외연도항( 1.2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2천년 중국의 제나라 왕과 군사 5백 명이 망명해 살던 한국의 섬. 그 왕을 여전히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 충남 보령의 외연도 이야기다.


3ha 규모의 아담한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등 고목들이 내내 신령한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로 연료를 쓰던 시절 섬들은 나무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나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이 지닌 신성함 때문이었다. 당산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경외의 대상이었다. 추위에 떨며 잘지언정 당산의 나무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대체 이 당산의 수호신은 누구일까. 어청도의 치동묘에서도 모시는 바로 그 ‘전횡장군’이다. 전횡은 연평도의 임경업 장군이나 추자도의 최영 장군이 그렇듯이 외연열도 풍어의 신이다.

전횡은 진나라 멸망 뒤 제나라를 세워 항우, 유방과 맞섰던 제나라 왕 전영의 동생이자 제나라 왕이 됐던 인물이다. 결국 전횡은 천하통일을 이룬 한나라 황제 유방에 패배해 오호도(嗚呼島)란 섬으로 망명했으나 유방의 소환을 받고 한나라 수도 낙양으로 가던 중 유방에게 고개 숙일 수 없다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전횡의 자결 소식을 듣고 섬에 남아 있던 그의 부하 500명 또한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전횡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뒤 천고의 미담이 됐다. 그래서 전횡은 충절의 상징으로, 그의 부하들은 의리의 상징으로 추앙 받아왔다. 전횡의 부하들이 오호(嗚呼)! 탄식을 하며 자결을 했다 해서 전횡이 머물던 섬은 오호도란 이름을 얻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제전횡문(祭田橫文)’을 지어 애도하였고 고려의 정몽주, 정도전 등 수많은 이들이 전횡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고려 말의 문장가 이숭인도 오호도란 시를 써서 전횡을 기렸다. 이숭인의 시에는 오호도가 동해 바다에 있다 했다. 중국의 동해는 한국의 서해, 곧 황해를 이른다. “오호도는 동해바다 한복판에 있노니/푸른 물결 아득한데 한 점 새파랗구나.”

전횡의 사연은 서산읍지인「호산록」(1619)이나 1936년에 건립된 전횡 사당의「전공사당기(田公祠堂記)에도 기록되어 있다. 전횡의 이야기는 또 외연도 인근 어청도에도 전해진다. 이 지역 섬 사람들은 전횡이 머물던 오호도가 자신의 섬이라 믿고 있다. 어청도의 전설은 전횡이 해적질로 연명했다고 전한다. 전횡이 어청도 서방산 정상에 올라 쇠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는 배들을 어청도로 유인한 다음 선박을 탈취해 살아갔다는 것이다.

외연도 부근의 섬 녹도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전횡은 쇠부채를 이용해 세곡선을 섬으로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준 뒤 세곡선은 불살라 버렸다 한다. 중국의 지모시(即墨市)에도 전횡의 전설이 깃든 전횡도(田横岛)라는 섬이 있다. 칭다오[青岛] 10경중 하나로 꼽히는 황해(黄海)의 섬이다. 전횡도에는 전횡 일가를 배향한 제왕전(齊王殿)까지 있다. 외연도, 어청도, 녹도, 전횡도가 다 오호도인 것이다.
전횡장군 사당은 마을 신전인 당집이다. 이 당집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2월15일에 당제가 모셔진다. 14일 저녁이면 옛 풍습대로 제주로 뽑힌 남자들만 신전에 올라 제사 준비를 한다. 제주는 부정을 타지 않은 남자 중에서 뽑는다. 당집 옆 건물에서 제관이 머물며 제물을 준비한다. 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옛날에는 제법 규모가 큰 당제인 경우 대부분 제주가 직접 소를 잡아 바쳤지만 그 풍습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대부분 정육점에서 사다가 바친다. 당제의 전통이 이처럼 잘 살아 있는 곳은 드물다. 그만큼 당집이 주민들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레이더나 GPS가 바닷길의 안내자가 됐다 해도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다. 바다는 늘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생사가 한순간인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당제는 여전히 큰 역할을 한다. 보험 하나 더 들어서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150세대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80척이나 되는 어선이 있으니 섬은 전적으로 바다에 의지해 살아간다. 늘 위험한 먼 바다에서 조업하는 이 어선들이 당제를 지탱시켜온 힘이다. 전통은 돈벌이를 통해 전승된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무심하다. 폐허만 남은 타국의 신전들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도 정작 2천년을 이어 현존하는 우리 전통신의 신전은 존재조차 모른다. 

대천 항에서 서쪽으로 53km 떨어진 외연도는 충남 보령시 70여개의 섬들 중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더 가면 중국이다. 면적은 1.8㎢로 약 54만 평의 조그만 섬이지만 일찍이 서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 옛날에는 해마다 파시가 형성될 만큼 어장이 발달한 곳이다. 현재는 190여 가구에 4백 여 명의 비교적 많은 주민이 포구를 중심으로 반달형의 마을을 형성하고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외연도는 청섬, 작은청섬, 수수떡섬, 밧갱이, 느래 등 10여개의 섬들과 무리를 이루고 있다.

외연도 둘레길

백섬백길

70

6km

어청도와 함께 고대 중국 제나라 왕 전횡이 다스리던 전설의 섬, 수백년 노거수들이 도열한 신령한 당산 숲

코스 소개

2천년 전 중국 제나라 왕과 군사 5백이 망명해 살던 섬, 외연도. 내내 바다를 보면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은 외연도 여행의 백미다. 외연도 둘레길은 서방파제 망재산 등산로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산정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망재산 뒤안을 돌아 고래의 성기처럼 불쑥 솟아있는 ‘고래조지’ 길을 빠져나오면 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고래조지는 굴업도의 개머리 같은 초지다. 무마도,오도, 석도 등 무인도를 품은 외연도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코스세부정보

외연도항( 0 km) 망재봉( 1 km) 고래조지( 0.3 km) 고리금( 0.7 km) 큰멍금( 1.2 km) 노랑배( 1 km) 봉화산( 0.6 km) 외연도항( 1.2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2천년 중국의 제나라 왕과 군사 5백 명이 망명해 살던 한국의 섬. 그 왕을 여전히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 충남 보령의 외연도 이야기다.


3ha 규모의 아담한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등 고목들이 내내 신령한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로 연료를 쓰던 시절 섬들은 나무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나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이 지닌 신성함 때문이었다. 당산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경외의 대상이었다. 추위에 떨며 잘지언정 당산의 나무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대체 이 당산의 수호신은 누구일까. 어청도의 치동묘에서도 모시는 바로 그 ‘전횡장군’이다. 전횡은 연평도의 임경업 장군이나 추자도의 최영 장군이 그렇듯이 외연열도 풍어의 신이다.

전횡은 진나라 멸망 뒤 제나라를 세워 항우, 유방과 맞섰던 제나라 왕 전영의 동생이자 제나라 왕이 됐던 인물이다. 결국 전횡은 천하통일을 이룬 한나라 황제 유방에 패배해 오호도(嗚呼島)란 섬으로 망명했으나 유방의 소환을 받고 한나라 수도 낙양으로 가던 중 유방에게 고개 숙일 수 없다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전횡의 자결 소식을 듣고 섬에 남아 있던 그의 부하 500명 또한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전횡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뒤 천고의 미담이 됐다. 그래서 전횡은 충절의 상징으로, 그의 부하들은 의리의 상징으로 추앙 받아왔다. 전횡의 부하들이 오호(嗚呼)! 탄식을 하며 자결을 했다 해서 전횡이 머물던 섬은 오호도란 이름을 얻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제전횡문(祭田橫文)’을 지어 애도하였고 고려의 정몽주, 정도전 등 수많은 이들이 전횡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고려 말의 문장가 이숭인도 오호도란 시를 써서 전횡을 기렸다. 이숭인의 시에는 오호도가 동해 바다에 있다 했다. 중국의 동해는 한국의 서해, 곧 황해를 이른다. “오호도는 동해바다 한복판에 있노니/푸른 물결 아득한데 한 점 새파랗구나.”

전횡의 사연은 서산읍지인「호산록」(1619)이나 1936년에 건립된 전횡 사당의「전공사당기(田公祠堂記)에도 기록되어 있다. 전횡의 이야기는 또 외연도 인근 어청도에도 전해진다. 이 지역 섬 사람들은 전횡이 머물던 오호도가 자신의 섬이라 믿고 있다. 어청도의 전설은 전횡이 해적질로 연명했다고 전한다. 전횡이 어청도 서방산 정상에 올라 쇠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는 배들을 어청도로 유인한 다음 선박을 탈취해 살아갔다는 것이다.

외연도 부근의 섬 녹도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전횡은 쇠부채를 이용해 세곡선을 섬으로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준 뒤 세곡선은 불살라 버렸다 한다. 중국의 지모시(即墨市)에도 전횡의 전설이 깃든 전횡도(田横岛)라는 섬이 있다. 칭다오[青岛] 10경중 하나로 꼽히는 황해(黄海)의 섬이다. 전횡도에는 전횡 일가를 배향한 제왕전(齊王殿)까지 있다. 외연도, 어청도, 녹도, 전횡도가 다 오호도인 것이다.
전횡장군 사당은 마을 신전인 당집이다. 이 당집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2월15일에 당제가 모셔진다. 14일 저녁이면 옛 풍습대로 제주로 뽑힌 남자들만 신전에 올라 제사 준비를 한다. 제주는 부정을 타지 않은 남자 중에서 뽑는다. 당집 옆 건물에서 제관이 머물며 제물을 준비한다. 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옛날에는 제법 규모가 큰 당제인 경우 대부분 제주가 직접 소를 잡아 바쳤지만 그 풍습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대부분 정육점에서 사다가 바친다. 당제의 전통이 이처럼 잘 살아 있는 곳은 드물다. 그만큼 당집이 주민들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레이더나 GPS가 바닷길의 안내자가 됐다 해도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다. 바다는 늘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생사가 한순간인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당제는 여전히 큰 역할을 한다. 보험 하나 더 들어서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150세대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80척이나 되는 어선이 있으니 섬은 전적으로 바다에 의지해 살아간다. 늘 위험한 먼 바다에서 조업하는 이 어선들이 당제를 지탱시켜온 힘이다. 전통은 돈벌이를 통해 전승된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무심하다. 폐허만 남은 타국의 신전들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도 정작 2천년을 이어 현존하는 우리 전통신의 신전은 존재조차 모른다. 

대천 항에서 서쪽으로 53km 떨어진 외연도는 충남 보령시 70여개의 섬들 중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더 가면 중국이다. 면적은 1.8㎢로 약 54만 평의 조그만 섬이지만 일찍이 서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 옛날에는 해마다 파시가 형성될 만큼 어장이 발달한 곳이다. 현재는 190여 가구에 4백 여 명의 비교적 많은 주민이 포구를 중심으로 반달형의 마을을 형성하고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외연도는 청섬, 작은청섬, 수수떡섬, 밧갱이, 느래 등 10여개의 섬들과 무리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