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는 국내 최고의 해상 풍경을 가진 섬이다. 한국의 계림이고 한국의 하롱베이다. 홍도 주변을 수놓은 기암괴석들은 마치 신들의 정원처럼 신비롭다. 홍도 깃대봉길은 홍도1구 마을에서 시작해 깃대봉까지 이어지는 동백 터널길로, 화려하게 이를 데 없는 홍도 동백의 전시장이다. 홍도의 주산 깃대봉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홍도 앞바다의 풍광은 선경을 방불케한다.
세계 명작 같은 섬들이 있다.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줄거리를 꿰고 있어서 마치 읽어본 듯 한 느낌이 드는 세계 명작. 가보지 않았는데도 방송 언론을 통해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마치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섬. 홍도는 그런 세계 명작 같은 섬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끝내 세계 명작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홍도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세계 명작이다. 한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읽을수록 맛이 새로워지는 걸작. 한국에서 꼭 하나의 섬만 가보겠다면 홍도로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한국 최고의 섬. 물론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니 권장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홍도는 평일에 가는 것이 좋다. 특히 봄 동백이 활짝 필 때가 제격이다. 본격적인 상춘객들이 몰리기 전, 4월 초쯤이면 홍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 된다.
실상 홍도는 사철 어느 때 가더라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기암괴석의 그 빼어난 절경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홍도는 한국의 계림이고 한국의 하롱베이다. 홍도 주변을 수놓은 기암괴석들은 마치 신들의 정원처럼 신비롭다.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한마디로 보물섬이다. 석양녘이면 섬의 절벽은 홍의를 입은 것처럼 붉게 물든다. 그래서 옛날에는 홍의도라 했었고 지금은 또 홍도다. 홍도의 주산 깃대봉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 터널 길과 깃대봉 산정에서 펼쳐지는 다도해 풍광은 선경을 방불케 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풍경이야말로 홍도 여행의 백미다. 남문바위, 시루떡바위, 독립문바위, 병풍바위, 만물상, 슬픈여, 일곱남매바위 등 기암괴석마다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홍도 여행은 그야말로 전설적 여행이다.
홍도에는 1구와 2구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관광업의 중심은 1구. 여객선이 닿지 않는 2구 마을은 관광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2구 마을 주민들은 어로를 해서 1구의 횟집에 물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1970년대 이후 홍도는 주민 대다수가 관광업에 기대고 산다. 주민 4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에 봄,가을 행락철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이면 하루 1,000명이 넘는 외지인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이때만 피하면 한가로운 홍도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인 섬들은 성수기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3월 말부터 4월 한 달 동안은 홍도 분교에서 시작돼 깃대봉 산정에 이르는 숲길은 그대로 동백터널이다. 동백의 화원, 동백의 전시장이다. 큰 바다 한가운데 있어 어느 섬보다 산자수명한 까닭일까. 홍도의 동백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단지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처연함까지 겸비했다. 어찌 편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동백의 시절이면 홍도는 온통 붉게 타오르는 동백으로 인해 홍도라는 이름보다 더욱 붉게 빛난다.
홍도 1구 선착장 초입의 죽항제당이 있는 당숲도 빼어난 동백 숲이다. 당숲은 대부분이 동백나무 군락인데 3백 이상 된 거목들이다. 당숲에 들면 신령스런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당숲에는 구실잣밤나무와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의 거목도 있다. 이 당숲의 축항 제당은 해마다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던 마을신전이다. 제당은 1847년(헌종13) 감찰 벼슬을 한 김씨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산 숲은 마을의 산신이자 당할아버지다. 해마다 정월 초사흘 자시에는 신목인 동백나무 아래서 ‘산신제’가 모셔졌고 바로 밑의 당할아버지 나무인 잣밤나무 아래서는 당할아버지를 모시는 제가 올려졌다. 당숲에서 당제가 끝나면 선창가로 가서 풍어제인 ‘둑제’를 모시고 홍도의 수호신인 ‘거북바위’ 앞에서 모든 재액을 싣고 가라는 뜻으로 ‘용왕허수아비’를 띄워 보내며 모든 제를 마쳤다. 당제는 1972년 제관의 집에 우환이 들면서 중지되었고 이후 당집도 허물어져 버렸다. 문화재청이 2007년에 당집과 제당을 복원했다. 일제가 숯을 공출하던 시절에도 감히 손을 댈 수 없었던 신목들. 이곳에 여전히 원시림의 숲이 남아 있는 것은 당산 신의 영험함 때문이다.
홍도는 석양녘 멀리서 바라보면 섬의 절벽이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붉게 물든다 해서 홍도란 이름을 얻었다. 홍의도라고도 했었다. 옛날 중국을 오가던 선단이 동남풍을 기다렸다 하여 대풍도(待風島)라 불리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등에서는 홍의도(紅衣島)로,『숙종실록』에는 홍어도(紅魚島)로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했다가 이후 지도군, 무안군을 거처 지금의 신안군 소속이 됐다.
깃대봉으로 가는 동백나무 숲 터널 아래 오른 쪽 길가에는 두기의 미륵이 서있다. 풍어와 소원을 빌던 신앙물이다. 홍도의 성황당이었다. 고기잡이를 하다 그물에 걸린 미륵을 마을 주민들이 전망 좋은 이곳으로 모셔와 세웠다고 전한다. 한기는 본래 있던 미륵이 아니라 근래에 다시 세운 자연석이다. 남자미륵, 여자미륵이 쌍으로 있었는데 2003년 경 남자 미륵이 유실 된 뒤 남자 미륵을 새로 세웠다. 지금도 가끔씩 무속인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간다.
홍도는 국내 최고의 해상 풍경을 가진 섬이다. 한국의 계림이고 한국의 하롱베이다. 홍도 주변을 수놓은 기암괴석들은 마치 신들의 정원처럼 신비롭다. 홍도 깃대봉길은 홍도1구 마을에서 시작해 깃대봉까지 이어지는 동백 터널길로, 화려하게 이를 데 없는 홍도 동백의 전시장이다. 홍도의 주산 깃대봉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홍도 앞바다의 풍광은 선경을 방불케한다.
세계 명작 같은 섬들이 있다.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줄거리를 꿰고 있어서 마치 읽어본 듯 한 느낌이 드는 세계 명작. 가보지 않았는데도 방송 언론을 통해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마치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섬. 홍도는 그런 세계 명작 같은 섬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끝내 세계 명작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홍도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세계 명작이다. 한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읽을수록 맛이 새로워지는 걸작. 한국에서 꼭 하나의 섬만 가보겠다면 홍도로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한국 최고의 섬. 물론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니 권장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홍도는 평일에 가는 것이 좋다. 특히 봄 동백이 활짝 필 때가 제격이다. 본격적인 상춘객들이 몰리기 전, 4월 초쯤이면 홍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 된다.
실상 홍도는 사철 어느 때 가더라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기암괴석의 그 빼어난 절경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홍도는 한국의 계림이고 한국의 하롱베이다. 홍도 주변을 수놓은 기암괴석들은 마치 신들의 정원처럼 신비롭다.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한마디로 보물섬이다. 석양녘이면 섬의 절벽은 홍의를 입은 것처럼 붉게 물든다. 그래서 옛날에는 홍의도라 했었고 지금은 또 홍도다. 홍도의 주산 깃대봉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 터널 길과 깃대봉 산정에서 펼쳐지는 다도해 풍광은 선경을 방불케 하지만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풍경이야말로 홍도 여행의 백미다. 남문바위, 시루떡바위, 독립문바위, 병풍바위, 만물상, 슬픈여, 일곱남매바위 등 기암괴석마다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홍도 여행은 그야말로 전설적 여행이다.
홍도에는 1구와 2구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관광업의 중심은 1구. 여객선이 닿지 않는 2구 마을은 관광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2구 마을 주민들은 어로를 해서 1구의 횟집에 물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1970년대 이후 홍도는 주민 대다수가 관광업에 기대고 산다. 주민 4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에 봄,가을 행락철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이면 하루 1,000명이 넘는 외지인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이때만 피하면 한가로운 홍도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인 섬들은 성수기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3월 말부터 4월 한 달 동안은 홍도 분교에서 시작돼 깃대봉 산정에 이르는 숲길은 그대로 동백터널이다. 동백의 화원, 동백의 전시장이다. 큰 바다 한가운데 있어 어느 섬보다 산자수명한 까닭일까. 홍도의 동백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단지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처연함까지 겸비했다. 어찌 편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동백의 시절이면 홍도는 온통 붉게 타오르는 동백으로 인해 홍도라는 이름보다 더욱 붉게 빛난다.
홍도 1구 선착장 초입의 죽항제당이 있는 당숲도 빼어난 동백 숲이다. 당숲은 대부분이 동백나무 군락인데 3백 이상 된 거목들이다. 당숲에 들면 신령스런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당숲에는 구실잣밤나무와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의 거목도 있다. 이 당숲의 축항 제당은 해마다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던 마을신전이다. 제당은 1847년(헌종13) 감찰 벼슬을 한 김씨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산 숲은 마을의 산신이자 당할아버지다. 해마다 정월 초사흘 자시에는 신목인 동백나무 아래서 ‘산신제’가 모셔졌고 바로 밑의 당할아버지 나무인 잣밤나무 아래서는 당할아버지를 모시는 제가 올려졌다. 당숲에서 당제가 끝나면 선창가로 가서 풍어제인 ‘둑제’를 모시고 홍도의 수호신인 ‘거북바위’ 앞에서 모든 재액을 싣고 가라는 뜻으로 ‘용왕허수아비’를 띄워 보내며 모든 제를 마쳤다. 당제는 1972년 제관의 집에 우환이 들면서 중지되었고 이후 당집도 허물어져 버렸다. 문화재청이 2007년에 당집과 제당을 복원했다. 일제가 숯을 공출하던 시절에도 감히 손을 댈 수 없었던 신목들. 이곳에 여전히 원시림의 숲이 남아 있는 것은 당산 신의 영험함 때문이다.
홍도는 석양녘 멀리서 바라보면 섬의 절벽이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붉게 물든다 해서 홍도란 이름을 얻었다. 홍의도라고도 했었다. 옛날 중국을 오가던 선단이 동남풍을 기다렸다 하여 대풍도(待風島)라 불리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등에서는 홍의도(紅衣島)로,『숙종실록』에는 홍어도(紅魚島)로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했다가 이후 지도군, 무안군을 거처 지금의 신안군 소속이 됐다.
깃대봉으로 가는 동백나무 숲 터널 아래 오른 쪽 길가에는 두기의 미륵이 서있다. 풍어와 소원을 빌던 신앙물이다. 홍도의 성황당이었다. 고기잡이를 하다 그물에 걸린 미륵을 마을 주민들이 전망 좋은 이곳으로 모셔와 세웠다고 전한다. 한기는 본래 있던 미륵이 아니라 근래에 다시 세운 자연석이다. 남자미륵, 여자미륵이 쌍으로 있었는데 2003년 경 남자 미륵이 유실 된 뒤 남자 미륵을 새로 세웠다. 지금도 가끔씩 무속인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간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