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도 마실길

백섬백길

37

8.4km

300년생 3만평의 솔밭과 3만평의 유채꽃밭,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든 섬

관매도 마실길

백섬백길

37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

코스 소개

관매도 마실길은 국내에서 손꼽을 정도의 아름다운 섬길이다. 해송 숲길을 비롯해 돈대산 가는길, 하늘다리 가는길, 방아섬 가는길, 마을 돌담길 등 섬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 모두를 걸어서 갈 수 있다. 모든 길이 걷기 좋아 벗과 함께 가볍게 걸을 수도 있고, 긴 트레킹도 가능하다. 특히, 봄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관매 들판의 풍경은 숨을 멎게 한다.

코스세부정보

관매도항( 0 km) 관매해수욕장 입구( 0.8 km) 방아섬 갈림길( 0.9 km) 장산편마을( 0.2 km) 샛배( 0.6 km) 돈대산( 1.2 km) 앙덕기미( 1 km) 하늘다리( 1.2 km) 앙덕기미( 1.2 km) 관호 마을회관( 0.5 km) 관매도항( 0.8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관매도에는 마을 뒷산에 붙어있은 작은 무인도인 방아섬이 있다. 관매도해수욕장과 더불어 관매도의 상징물같은 섬이다. 선녀들이 가끔 내려와 방아를 찧다 올라가곤 했다하여 방아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방아섬과 관련하여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방아섬의 방아바위 때문에 건너 섬 청등도 처녀들이 바람 잘 날 없었다. 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청등도 어른들은 처녀들이 방아섬을 보는 것조차 금기시했고 관매도 사람들과는 결혼도 시키지 않았다. 또 방아섬과 마주보고 있는 하조도 신전리에서도 관매도 사람과 결혼하면 파경에 이른다는 속설이 있어서 혼인을 금했다고 전한다. 대체 저 방아섬은 왜 청등도 처녀들을 달뜨게 하고 섬들 사이의 혼인까지 막았더란 말인가.

아마도 방아섬 중앙에 솟아오른 장대한 남근 모양의 방아바위 때문일 것이다. 선녀들이 내려와 찍었다는 방아가 무슨 방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겠는가. 본래 저 바위는 좇바위나 자지바위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라 느낀 사람들이 방아라는 메타포를 사용한 것일 터다. 남근석이 일깨워주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청등도나 하조도 처녀들을 일찍부터 이성에 눈뜨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성에 자유로워지는 처녀들의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그런 금기들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1965년 여름, 어떤 남녀가 관매도를 찾았다. 둘은 마을 뒷산에서 동반자살을 했다. 음독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20대 후반, 두 남녀는 우연히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다. 평생 함께 할 것을 약속한 남녀는 양쪽 부모님의 결혼 허락까지 받아냈다. 마침내 양가의 상견례 날. 비극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됐다. 상견례를 위해 식당에서 만난 양가 부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의 아버지와 여자의 아버지는 남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한국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다 헤어진 친형제였다. 상견례 장은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 되고 말았다. 기막힌 인연이었다. 다시 만난 형제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두 남녀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사랑하던 연인이 갑자기 사촌 남매가 되고 말았다.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사랑 또한 금단의 사랑이 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 받던 남녀는 외딴 섬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했다. 그곳이 관매도였다. 현생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생에서 이루기로 기약한 연인은 함께 극약을 마시고 생을 하직했다.


자녀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고 관매도를 찾아온 양가 부모도 그들의 비극적 사랑이 다음 생에서라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둘을 그들이 목숨을 끊은 관매도에 묻어주기를 원했다. 마을 사람들도 두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무당을 불러 씻김굿을 해주었다. 장례도 마을에서 치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이 죽어서나마 서로 자유롭게 만나기를 바라며 두 관의 가운데를 터놓고 합장을 시켜주었다. 그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바구니만한 불덩어리 두 개가 백사장 끝 동굴 해안가 절벽을 누비며 춤추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두 남녀가 원한을 푸는 춤을 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관매도는 관매리와 관호리 두 개의 큰 마을이 있고 장산편, 장산너머 두 개의 작은 마을이 있다. 관매도는 원래 볼매도, 관호도 등으로 불렸다. 지금도 조도 군도의 섬으로 둘러쌓인 관매도 앞바다는 호수처럼 아늑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관호라 이름했다. 하지만 일제 때 전혀 엉뚱한 이름을 얻어 관매도가 되었다. 매화나무 한 그루 없던 관호도가 매화섬[觀梅島]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이름에 맞추기 위해 매화나무 단지를 조성하기도 했지만 아직 매화섬이라 이르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관매리 해변을 따라 조성된 곰솔숲은 이 땅 어느 해변이나 섬보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도 크다. 300여 년 전 섬에 입도한 함씨가 방풍림으로 조성했다는 곰솔 소나무숲은 무려 3만여 평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 덕에 관매도의 솔숲은 2010년 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관매도 마실길

백섬백길

37

8.4km

300년생 3만평의 솔밭과 3만평의 유채꽃밭,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든 섬

코스 소개

관매도 마실길은 국내에서 손꼽을 정도의 아름다운 섬길이다. 해송 숲길을 비롯해 돈대산 가는길, 하늘다리 가는길, 방아섬 가는길, 마을 돌담길 등 섬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 모두를 걸어서 갈 수 있다. 모든 길이 걷기 좋아 벗과 함께 가볍게 걸을 수도 있고, 긴 트레킹도 가능하다. 특히, 봄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돈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관매 들판의 풍경은 숨을 멎게 한다.

코스세부정보

관매도항( 0 km) 관매해수욕장 입구( 0.8 km) 방아섬 갈림길( 0.9 km) 장산편마을( 0.2 km) 샛배( 0.6 km) 돈대산( 1.2 km) 앙덕기미( 1 km) 하늘다리( 1.2 km) 앙덕기미( 1.2 km) 관호 마을회관( 0.5 km) 관매도항( 0.8 km)

교통

출발지

도착지

A

출발지

도착지

관매도에는 마을 뒷산에 붙어있은 작은 무인도인 방아섬이 있다. 관매도해수욕장과 더불어 관매도의 상징물같은 섬이다. 선녀들이 가끔 내려와 방아를 찧다 올라가곤 했다하여 방아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방아섬과 관련하여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방아섬의 방아바위 때문에 건너 섬 청등도 처녀들이 바람 잘 날 없었다. 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청등도 어른들은 처녀들이 방아섬을 보는 것조차 금기시했고 관매도 사람들과는 결혼도 시키지 않았다. 또 방아섬과 마주보고 있는 하조도 신전리에서도 관매도 사람과 결혼하면 파경에 이른다는 속설이 있어서 혼인을 금했다고 전한다. 대체 저 방아섬은 왜 청등도 처녀들을 달뜨게 하고 섬들 사이의 혼인까지 막았더란 말인가.

아마도 방아섬 중앙에 솟아오른 장대한 남근 모양의 방아바위 때문일 것이다. 선녀들이 내려와 찍었다는 방아가 무슨 방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겠는가. 본래 저 바위는 좇바위나 자지바위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라 느낀 사람들이 방아라는 메타포를 사용한 것일 터다. 남근석이 일깨워주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청등도나 하조도 처녀들을 일찍부터 이성에 눈뜨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성에 자유로워지는 처녀들의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그런 금기들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1965년 여름, 어떤 남녀가 관매도를 찾았다. 둘은 마을 뒷산에서 동반자살을 했다. 음독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20대 후반, 두 남녀는 우연히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다. 평생 함께 할 것을 약속한 남녀는 양쪽 부모님의 결혼 허락까지 받아냈다. 마침내 양가의 상견례 날. 비극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됐다. 상견례를 위해 식당에서 만난 양가 부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의 아버지와 여자의 아버지는 남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한국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다 헤어진 친형제였다. 상견례 장은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 되고 말았다. 기막힌 인연이었다. 다시 만난 형제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두 남녀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사랑하던 연인이 갑자기 사촌 남매가 되고 말았다.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사랑 또한 금단의 사랑이 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 받던 남녀는 외딴 섬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했다. 그곳이 관매도였다. 현생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생에서 이루기로 기약한 연인은 함께 극약을 마시고 생을 하직했다.


자녀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고 관매도를 찾아온 양가 부모도 그들의 비극적 사랑이 다음 생에서라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둘을 그들이 목숨을 끊은 관매도에 묻어주기를 원했다. 마을 사람들도 두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무당을 불러 씻김굿을 해주었다. 장례도 마을에서 치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이 죽어서나마 서로 자유롭게 만나기를 바라며 두 관의 가운데를 터놓고 합장을 시켜주었다. 그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바구니만한 불덩어리 두 개가 백사장 끝 동굴 해안가 절벽을 누비며 춤추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두 남녀가 원한을 푸는 춤을 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관매도는 관매리와 관호리 두 개의 큰 마을이 있고 장산편, 장산너머 두 개의 작은 마을이 있다. 관매도는 원래 볼매도, 관호도 등으로 불렸다. 지금도 조도 군도의 섬으로 둘러쌓인 관매도 앞바다는 호수처럼 아늑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관호라 이름했다. 하지만 일제 때 전혀 엉뚱한 이름을 얻어 관매도가 되었다. 매화나무 한 그루 없던 관호도가 매화섬[觀梅島]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이름에 맞추기 위해 매화나무 단지를 조성하기도 했지만 아직 매화섬이라 이르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관매리 해변을 따라 조성된 곰솔숲은 이 땅 어느 해변이나 섬보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도 크다. 300여 년 전 섬에 입도한 함씨가 방풍림으로 조성했다는 곰솔 소나무숲은 무려 3만여 평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 덕에 관매도의 솔숲은 2010년 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