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미 선착장에서 장지까지 이어지는 18.5km의 금오도 비렁길은 총 5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다. 벼랑을 뜻하는 여수말인 ‘비렁’에서 묻어나듯 전 구간 모두 깎아지른 해안을 따라가지만, 대부분의 구간이 가파르지 않고 평탄하다.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보며 벼랑 위를 걷는 금오도 비렁길은 국내 최고의 섬길이다. 걷는 내내 청옥 빛의 바다와 기암괴석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
조선시대 금오도는 나라에서 국영 사슴목장으로 또 왕실의 관을 짜는 소나무인 황장목을 기르는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했다. 공도정책으로 백성들의 섬 거주를 금지한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직후부터는 대부분의 섬에서 사람의 거주가 허락됐지만, 금오도는 조선 왕조가 끝나갈 때까지도 주민 거주를 금지했다. 왕실을 위해 철저히 봉쇄한 것이다.
금오도에 다시 사람살이가 공식 허가된 것은 1885년이다. 그래서 몇백 년 만에 금오도에 다시 들어온 사람들은 개척민이었다. 산을 개간해 논밭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 면사무소 앞에는 1918년에 세워진 ‘금오도 민유지 해결 기념비’가 서 있다. 그 옆에는 금오도 개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 10월 26일 세워진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금오도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무렵 마을 당제를 지낼 때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당제를 모시는 동안 근처를 배회하다가 당제가 모두 끝나면 돌아갔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면적 27㎢, 해안선 길이 64.5㎞의 금오도는 여수에서 돌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금오도란 이름은 섬의 형태가 자라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래서 황금(金)자라(鰲)의 섬이다. 북서쪽에 개도, 남쪽에 소리도가 있다. 인접 섬인 안도와는 안도대교로 연결돼 있다.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 금오도는 동백섬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곳곳이 동백이다. 곳곳이 동백 터널인 비렁길에서는 겨울 동백의 시절이면 내내 붉은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동백이 특히 아름다운 곳은 비렁길 3-4코스다. 바람 부는 날 비렁길 동백 터널을 걷는다면 떨어지는 동백꽃 벼락을 맞을 수도 있겠다.
흔히 동백은 그 이름처럼 겨울 꽃의 대명사로 여기지만, 실상 개화기간이 가장 긴 꽃 중 하나다. 남녘에서는 늦가을에 피기 시작해 늦봄까지도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물경 반년 가까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 피는 때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가을에 피면 추백, 봄에 피면 춘백, 겨울에 피어야 비로소 동백이다. 흔히 내륙지방 사람들은 동백이 오동도, 지심도 같은 몇몇 섬이나 선운사 정도에만 피는 줄 알지만 실상 동백은 남쪽 지방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동백은 실용성도 뛰어나다. 요즘 들어 동백 오일이나 동백 화장품이 인기지만 옛날 여인들은 늘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또 식용이나 등잔불 밝히는 데도 사용했다. 남쪽 섬들에서는 섣달그믐 저녁이면 동백꽃 우린 물로 목욕했다. 동백꽃 물로 목욕하면 종기도 치료되고 피부병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동백은 주술적인 힘도 가졌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나 엉덩이를 치면 그 여자는 사내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묘장(卯杖) 또는 묘추(卯錐)라 했다.
동백은 두 번 핀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또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세파에 찌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데 동백만한 꽃이 또 있을까. 꽃 시절에 대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절정에서 툭 떨어지는 꽃. 화려했던 날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갈갈이 찢어져 흩날리는 벚꽃이나 모란꽃에 비해 동백은 얼마나 절조 있는가. 그래서 동백은 어떤 것이 꽃다운 삶인지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생의 거울 같은 꽃이다.
함구미 선착장에서 장지까지 이어지는 18.5km의 금오도 비렁길은 총 5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다. 벼랑을 뜻하는 여수말인 ‘비렁’에서 묻어나듯 전 구간 모두 깎아지른 해안을 따라가지만, 대부분의 구간이 가파르지 않고 평탄하다.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보며 벼랑 위를 걷는 금오도 비렁길은 국내 최고의 섬길이다. 걷는 내내 청옥 빛의 바다와 기암괴석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
조선시대 금오도는 나라에서 국영 사슴목장으로 또 왕실의 관을 짜는 소나무인 황장목을 기르는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했다. 공도정책으로 백성들의 섬 거주를 금지한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직후부터는 대부분의 섬에서 사람의 거주가 허락됐지만, 금오도는 조선 왕조가 끝나갈 때까지도 주민 거주를 금지했다. 왕실을 위해 철저히 봉쇄한 것이다.
금오도에 다시 사람살이가 공식 허가된 것은 1885년이다. 그래서 몇백 년 만에 금오도에 다시 들어온 사람들은 개척민이었다. 산을 개간해 논밭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 면사무소 앞에는 1918년에 세워진 ‘금오도 민유지 해결 기념비’가 서 있다. 그 옆에는 금오도 개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 10월 26일 세워진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금오도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무렵 마을 당제를 지낼 때 호랑이 한 쌍이 나타나 당제를 모시는 동안 근처를 배회하다가 당제가 모두 끝나면 돌아갔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면적 27㎢, 해안선 길이 64.5㎞의 금오도는 여수에서 돌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금오도란 이름은 섬의 형태가 자라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래서 황금(金)자라(鰲)의 섬이다. 북서쪽에 개도, 남쪽에 소리도가 있다. 인접 섬인 안도와는 안도대교로 연결돼 있다.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 금오도는 동백섬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곳곳이 동백이다. 곳곳이 동백 터널인 비렁길에서는 겨울 동백의 시절이면 내내 붉은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동백이 특히 아름다운 곳은 비렁길 3-4코스다. 바람 부는 날 비렁길 동백 터널을 걷는다면 떨어지는 동백꽃 벼락을 맞을 수도 있겠다.
흔히 동백은 그 이름처럼 겨울 꽃의 대명사로 여기지만, 실상 개화기간이 가장 긴 꽃 중 하나다. 남녘에서는 늦가을에 피기 시작해 늦봄까지도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물경 반년 가까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 피는 때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가을에 피면 추백, 봄에 피면 춘백, 겨울에 피어야 비로소 동백이다. 흔히 내륙지방 사람들은 동백이 오동도, 지심도 같은 몇몇 섬이나 선운사 정도에만 피는 줄 알지만 실상 동백은 남쪽 지방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동백은 실용성도 뛰어나다. 요즘 들어 동백 오일이나 동백 화장품이 인기지만 옛날 여인들은 늘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또 식용이나 등잔불 밝히는 데도 사용했다. 남쪽 섬들에서는 섣달그믐 저녁이면 동백꽃 우린 물로 목욕했다. 동백꽃 물로 목욕하면 종기도 치료되고 피부병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동백은 주술적인 힘도 가졌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나 엉덩이를 치면 그 여자는 사내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묘장(卯杖) 또는 묘추(卯錐)라 했다.
동백은 두 번 핀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또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세파에 찌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데 동백만한 꽃이 또 있을까. 꽃 시절에 대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절정에서 툭 떨어지는 꽃. 화려했던 날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갈갈이 찢어져 흩날리는 벚꽃이나 모란꽃에 비해 동백은 얼마나 절조 있는가. 그래서 동백은 어떤 것이 꽃다운 삶인지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생의 거울 같은 꽃이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이사장 박재일
소장 강제윤